[기고] 비전으로서 '한국 고유의 길'

[기고] 비전으로서 '한국 고유의 길'

정호열 성균관대 법학과 교수
2004.11.16 11:30

[기고] 비전으로서 '한국 고유의 길'

비전이 없는 기업이나 조직은 괴멸한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이념과 목표가 없을 때, 공동체는 구성요소를 결속시키는 끈을 상실한 채 무너져 내린다.

 

1980년대 말까지 한국은 뚜렷한 비전이 있었다. 북한이라는 외세 아닌 외세가 주는 공포감도 사람들을 결속시키는데 기여했지만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는 구호가 사람들을 하나로 묶었다. 그 결과 가장 짧은 기간내 산업화를 달성한 한국의 경제체제는 세계적인 각광을 받았다. 박정희의 그늘에서 민주화세력의 정점을 나누었던 김영삼과 김대중도 차례로 정권을 장악했고, 한국의 민주주의는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임을 과시했다.

 

문제는 민주화 이후인 오늘이다. 2004년 11월 현재 한국의 비극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을 뚜렷한 비전의 제시가 어렵다는데 있다. 민주화과정에서 수많은 데마고그들이 각양각색으로 선동한 결과 사람들의 기대치가 극대화된 탓에 사정은 더욱 어려워졌다.

 

이제 민주화도 식상하고, 개혁은 지겨운 얘깃거리다. 더러 민족통일에 목을 매는 척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갑자기 통일이라도 된다면 이것은 모두를 위해 재앙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스스로도 알고 있다. 북한이라도 예전처럼 공포스럽다면 반공이념 만큼은 살아남을 터인데 사회주의 초유의 세습체제에 미얀마 보다 조잡한 시스템으로 수백만이 아사하는 웃음거리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2만불 시대로 가자’라는 구호도 매력적이지 않다. 2만불로 가봤자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만불 경제를 달성하고 세계적 일류기업들이 나왔지만, 내 개인이 사는 모습은 별 볼일 없을 뿐 아니라 상대적 박탈감만 더 커졌던 경험이 이런 생각을 뒷받침한다.

 

새로운 비전을 통해 나라를 하나로 묶으면서 내일에 대한 시야를 열 책임은 궁극적으로 정치판에 있다. 그러나 정치판처럼 냉엄한 시장논리, 즉 표를 향한 선택이 지배하는 곳도 드물다. 정치인이 비전과 정책을 통해 정치 서비스를 공급하는 자라면 국민은 수요자다. 그리고 이 시장을 가동하는 매개변수는 한마디로 표(票)다. 양김시대를 거치면서 표를 얻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벌이는 것이 이 나라의 정치다.

 

오늘의 정치판이 저질, 무자격이요 근본없는 무리들로 가득 차 있다는 지적은 신랄하다. 그러나 정치판의 현실과 이상은 구별돼야 한다. 이제 한국 사회는 대중민주주의가 초래하는 비용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치러야 할 때가 됐다. 자유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시장경제 역시 엄청난 비용과 학습을 거친 후 성숙되기 때문이다.

 

국경없는 지구촌 경제, OECD 국가중 가장 높은 대외의존도를 가진 한국이 미국의 그늘을 벗어나 어디까지 `한국고유의 길’을 갈 수 있을까. 영미의 영향력에 염증을 내던 막강 독일은 `독일 고유의 길’을 주창하면서 세계를 1, 2차 대전으로 내몰고 쓸개를 씹는 참담한 맛을 보았다. 한국경제의 15배요 경제의 대외의존도는 한국의 4분의 1에 불과한 일본의 고이즈미가 부시를 대하는 모습은 비굴하기그지 없다.

 

한편 한 해외언론에서 `독일, 우스운 나라’라는 특집이 나올 정도로 경제가 엉망인 독일에서 쉬뢰더 총리가 보이는 언행은 독일 고유의 길을 추억케 하는 면이 있다. 복잡한 집안에서 태어나 기존질서에 대한 반발을 통해 정치적으로 성공한 쉬뢰더 개인의 취향일까, 아니면 독일 국민들이 역사로부터 배운 것을 잊어서일까. 보수적 열정에 가득한 부시정부의 재출범을 맞이하면서 한국 국민의 정치적, 경제적 선택을 다시한번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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