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영리한 전령의 神 '헤르메스'
그리스신화에서 제우스와 거인 아틀라스의 딸 마이아 사이에 '전령의 신’ 헤르메스가 태어난다. 영리했던 헤르메스는 갓난 아기 때 요람을 빠져나와 이복형인 아폴론의 목장에서 소 50마리를 훔쳤다.
헤르메스는 소들이 반대방향으로 간 것처럼 속이기 위해 소의 꼬리를 잡아끌어 뒤걸음질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도둑의 수호신’으로도 불린다.
헤르메스란 이름의 영국계 펀드가 최근 단 하루만에삼성물산의 지분 5%를 팔아치워 380억원에 이르는 차익을 거두었다. 다른 투자자들은 헤르메스가 주식을 팔기 전에 그들이 삼성물산에 대해 M&A 시도를 할 지도 모른다고 착각했다.
그들이 지난달 12일 보도자료를 통해 "삼성물산 측과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고 발표하는가 하면 지난달 26일 보도자료를 통해 "삼성물산의 자사주 매입을 환영한다. 앞으로 삼성전자 지분도 처분하길 기대한다"고 압박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제2의 소버린을 연상하기 쉬웠다.
헤르메스는 특히 언론을 십분 활용해왔다. 지난달말 국내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삼성물산에 대한 (누군가의)적대적 M&A를 도울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헤르메스는 이달 3일 삼성물산 주식을 전량 처분하고도 보도자료를 일체 내지 않았다. 그들이 삼성물산 주식을 모두 팔았다는 사실도 8일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주식 대량변동보고서를 통해 확인됐을 뿐이다.
국내 슈퍼개미가 적대적 M&A 기대감을 불러일으킨 뒤 주식을 팔아치웠다면 감독당국의 제재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삼성물산 지분을 계속 보유할 것이라거나 M&A를 시도하겠다는 직접적인 표현을 철저히 삼가하는 교묘한 행보를 보였다. 영리한 ‘전령의 신’에게 또 어느 소떼를 내줄지 모를 일이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