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나눔의 미학
12월,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거리로 나왔다. '쪽방' 주민들의 손을 잡으며 위로했고 수백포기의 김장김치를 버무렸다. 노숙자들에게 국밥을 퍼주고 굵은 땀을 흘리기도 했다.
삼성, 현대차, LG,SK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은 모두 작년보다 성금 기탁액을 늘렸다.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통신비를 줄이라고 직원들을 독려하면서도 성금액을 작년에 비해 배로 늘린 기업도 있고 조명 시간을 조절하며 에너지 절약을 하고 있는 한 기업은 복지 후원 프로그램을 위해 이달에만 10억원을 썼다.
오랜 경기 부진에 기업들도 지치고 예민해져 있다. 그러나 우울하고 불안한 시기에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깊이 새기고 있는 것 같다. 아예 '이웃과 함께 하는 주간'을 선포한 기업도 있고, 자원봉사를 위해서라면 이 달 한달 회사일을 빼먹어도 좋다며 직원들의 등을 떠미는 기업도 있다.
매년 연말이면 되풀이되곤 하지만, 올 겨울 기업들의 '이웃돌아보기'는 이렇게 유난히 뜨겁고 진지해 보인다.
시민단체 관계자와 기업체 간부가 22일 여의도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만나 이 문제를 화두로 얘기를 꺼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너무 유행처럼 기업들이 '나눔경영'을 외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이에 대해 기업체 간부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비틀어서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올 한해 내내 우리 경제는 찬바람이 쌩쌩부는 한겨울이었습니다. 청년실업자가 넘쳐나고 자영업자들이 넋을 잃고 있어요.
그나마 형편이 나은 대기업들이 다른 해 보다 훨씬 열심히 이웃을 돌아보는 건 같은 사회를 사는 한 구성원이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꾸며서, 또는 전략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고는 왠지 책임을 회피하는 것 같은 자괴감. 실제로 기업들은, 기업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