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반대표 던지는 사외이사
지난해말 서울 역삼동 삼성제일빌딩 6층 회의실. 제일모직 이사회에서 상근이사 4명과 사외이사 2명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삼성그룹이 추진 중인 강남 삼성타운 건설과 관련해 서초동 부지 261평을 평당 6000만원으로 삼성전자에 매각하는 안건에 제일모직 사외이사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
사외이사인 예종석 한양대 교수와 이종욱 변호사는 "앞으로 땅값이 더 올라갈텐데, 지금 파는 것은 회사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상근이사들은 "적정한 가격에 팔아 매각차익을 누릴 수 있는 기회"라고 맞섰다. 예 교수와 이 변호사는 막판까지 표결을 거부했고, 나머지 상근이사 4명이 가까스로 안건을 통과시켰다.
최근 사외이사들이 이사회에서 상근이사 측 안건에 비토(거부권)을 놓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가 거래소 시가총액 상위 4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제일모직을 비롯해 LG전자 SK네트웍스 KTF 대우조선해양 강원랜드 국민은행 등 7개 기업의 이사회에서 사외이사가 경영진 측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다. 타기업 기업어음(CP) 매입, 이사회 규정 개정, 이익배당 등 사안도 다양하다.
증권관련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서 ‘사외이사는 거수기’라는 말도 옛말이 될 것 같다. 그만큼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가 투명해진다는 반증이 될 수 있지만, 우려가 없는 것도 아니다. 증권사의 한 임원은 “사외이사들은 대부분 별도의 주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임 등에 대한 부담이 작다”며 “오히려 주주들의 소송에 따른 위험이 더 크기 때문에 주주이익을 해질만한 안건이 이사회에 올라오면 일단 반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주주의 단기적인 이익과 회사의 장기적인 성장이 충돌하는 안건을 놓고 사외이사들은 어떤 입장을 취할까? 사외이사들이 소송의 두려움 대신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을 고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