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2000억달러 시대의 '첫 경험'
23일 아침 일찍부터 한국은행 기자실이 술렁거렸다. 한국은행이 달러 자산을 매각한다는 외신 보도로 밤새 미국 뉴욕 외환시장 등 세계 금융시장에서 달러화 가치가 급락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발단은 지난 21일 오후 나온 한국은행의 업무보고 자료. 한은은 24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보고할 이 자료에서 2000억달러를 넘어선 외환보유액의 수익률 제고를 위해 투자대상 통화를 다변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같은 방침이 이미 수차례 나온 한국은행의 일관된 운용 방침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특별히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해묵은 내용이 외신을 타면서 세계 금융시장을 흔들어 버렸다. 외신 보도는 한국의 중앙은행이 달러자산 비중을 줄이기로 새롭게 결정한 것으로 시장에 받아들여졌다. 보도는 시장 코멘트를 거치면서 한은의 달러 자산 매각설로 둔갑했다. 외신들은 지난 18일 국회 재경위 한국투자공사(KIC) 법안 심의 때 한은측이 투자대상 통화 다변화를 설명하면서 예로 든 호주 달러, 캐나다 달러 등도 함께 언급, 이들 통화의 가치는 급등하기도 했다.
다행히 한은의 적극적인 해명에 힘입어 시장은 안정을 되찾았지만 이날의 해프닝이 남긴 교훈은 컸다. 2000억달러가 넘는, 세계 4위의외환을 보유한 국가로서의 위상을 확인했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고 관리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도 분명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최근 몇년새 수십배 급증했다. 한은에 짧은 기간에 완벽한 관리와 운용을 기대하기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여유를 갖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세계 금융시장은 허락하지 않았다. 이날 한은 관계자들은 "이렇게 영향이 클 지 몰랐다", "솔직히 두려운 생각도 든다"고 실토했다. 우리나라 외환보유고가 2000억달러를 돌파한지 채 2주가 되지 않아 벌어진 '한국은행발 쇼크'. 누구보다도 한은 자신에게 값진 경험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