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누구를 위한 '투기와의 전쟁'인가
모든 전쟁이 그렇듯이 전쟁에는 일부 무고한 희생이 따른다. 노태우 정부 때의 '범죄와의 전쟁'은 범죄를 뿌리뽑기보다는 서민들의 생활고만 가중시켰다는 불만을 샀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2주년 국정연설에서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지금까지 나온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으로 볼 때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발언수위로 볼 수 있다. 또 '투기와의 전쟁'을 통해서라도 집값을 안정시키고 집 없는 서민들이 내집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면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시기가 적절치 않다. 투기와의 전쟁은 필시 주택시장을 정조준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가뜩이나 위축된 분양시장과 거래시장은 고사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2003년 10.29대책 이후 주택시장은 공급물량이 급감하고 미분양 물량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건교부에 따르면 지난해 주택 공급물량은 2003년에 비해 20.8% 감소한 46만4000가구에 그쳤으며 미분양아파트는 외환위기 이후 최대치인 6만9000여 가구를 기록했다. 주택거래건수도 30% 이상 줄었다. 이같은 상황은 올 들어서도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
재건축과 판교 기대심리로 촉발된 일부지역의 집값 상승은 해당 지역에 대한 국지적 처방만으로 충분하다. 그런 점에서 2.17대책은 시의적절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투기와의 전쟁'으로 규제의 판을 키우게 되면 투기억제책의 '탄력운영'으로 살아난 불씨가 아예 꺼질 수 있으며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백방으로 노력했던 건설경기 연착륙 시도 또한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투기와의 전쟁'은 상처뿐인 영광이 될 공산이 크다.
투기대책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그쳐야 한다. 투기를 잡고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주택공급을 늘리는 것이 급선무다. 수급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 진정 '투기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