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벤처생태계의 맹수들
시스템통합(SI) 업체들은 벤처 생태계에서 맹수급에 속한다. 특히 소프트웨어(SW) 업계에선 '먹이사슬'의 최정상에 있다. 컴퓨터가 살아 움직이도록 두뇌와 신경망을 만들어 넣는 일은 가히 'IT산업의 꽃'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 SI 업계의 풍토가 마치 그 옛날의 노가다식 건설업계 같다. 첫째, 삼성SDS, LG CNS, SK C&C 등 재벌 계열사들이 상위 서열을 독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최대 고객은 자기 그룹이다. 둘째,이들이 온갖 편법과 상호 비방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치열한 수주전쟁을 벌인다. 경쟁사 고소-고발이 빈발하고, 저가 덤핑 경쟁에 단돈 1원짜리 입찰까지 눈에 띈다.
세째, 일단 '공사'를 따내면 하청-재하청 식으로 물량이 내려간다. 이 과정에서 중소 하청업체들은 줄줄이 고혈이 짜인다. 넷째,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생산성과 수익성이 떨어진다. 매출은 수조원대인데 흑자는 날까말까 하는 정도다. 다섯째, 각종 로비와 부패의 의혹이 짙다. 여섯째, 기업문화가 군대식이다. 최고 임원에서 신입사원에 이르기까지 툭하면 해병대 훈련에 철야 야간행군이다.
이렇게 비교하면 오히려 건설업계에서 불쾌해 할지 모르겠다. 세계시장을 누비는 한국의 글로벌 건설업체들을 폄하하는 게 아니냐는 반박도 있을 만하다. 이를 인정하다면 한국의 SI 업체들은 건설업계보다 못한 풍토 속에 있다. 신속함과 유연함, 상상력과 논리력이 어우러져야 할 SW 산업의 속성과는 분명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한발 물러난 '벤처스타' 안철수씨가 틈만 나면 한탄했던 것도 바로 잘못된 벤처 생태계의 문제였다. 그는 중소 벤처를 살리려면 정책자금을 뿌리기에 앞서 제발 생사여탈권을 쥔 대기업들의 횡포부터 바로 잡아달라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SI 업체를 포함한 IT 대기업들부터 좁은 국내시장에서 사생결단 식으로 싸우고 있으니 남들 사정 봐줄 여유가 있을 리 없다.
IT강국을 자임하는 한국 SW 산업의 현주소는 대략 이와 같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적인 SW 업체의 탄생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배고픈 맹수들이 비좁은 우리 안에서 서로 할퀴고 물어 뜯으면서 결국은 그들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천만다행이다. 우리가 이렇게 죽을 쑤고 있는 사이 외국의 다른 경쟁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점도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인도 IT 성장신화의 상징인 방갈로르. 최근에 둘러본 그곳의 SW 생태계는 그야말로 펄떡펄떡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시장은 세계로 열려 있다. 고객의 60%가 미국이고, 20%는 유럽이다. 전문인력은 넘치고 희망에 차있다. 이들은 처음에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다가, 좀 지나면 '상트로'(기아자동차 비스토)로 바꾸고, 또 좀 지나면 '쏘나타'를 탄다. 이같은 '성공 공식'통하면서 인도의 SW 산업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거듭났다. 이들은 이미 우리를 한참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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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적인 하청구조에 갇힌 우리 SW 업계에는 방갈로르와 같은 희망의 성공공식이 없다. 오히려 스스로를 '노가다'라 비하하는 넋두리만 들린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 SI 업체들과 중소 SW업체들은 더 이상 세계시장에서 설 땅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