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금융산업의 현주소

[광화문] 금융산업의 현주소

정희경 경제부장
2005.04.14 12:23

[광화문] 금융산업의 현주소

얼마 전 서울을 찾은 외국인 투자자를 만났다. 중국 미디어 기업의 서울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우리 말이 매우 서툰, `검은 머리`의 외국인이다.

그의 구상은 중국 기업을 곧바로 증권거래소에 등록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 업체를 미국 증시에 상장시킨 후 서울에 등록시킨다는 계획이다.

중국이 급성장하면서 외국인 직접 투자가 봇물을 이루고 있으나 기업들의 회계 처리나 경영 투명성 문제로 인해 외국인들은 신중합 입장이다. 이를 의식해 세계 최대 시장에서 미리 검증을 받아두겠다는 것이다.

다소 복잡한 수순을 밟아서라도 중국 기업을 서울로 끌어 오려는 데는 무엇보다 한국의 잠재력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에 대한 관심이 미국 못지 않고, 우량 기업이라면 자금 조달이 어렵지 않을 정도로 서울의 유동성도 괜찮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는 뉴욕에 이어 서울 상장이 성사되면 조성한 자금으로 중국의 다른 미디어 업체를 추가로 인수해 외형과 수익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기업이 이 기업에 투자한다면 베이징이나 상하이로 가 직접 인수를 추진하는 것 보다 효과적으로 중국 진출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덧붙였다.

투자 위험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한편 거대 시장에 신속히 진입할 수 있는 만큼 `일석이조`가 아니냐는 것이다. 대부분 국영화한 중국 미디어 업체들이 민영화에 나서고, 현지에서 `한류` 열풍이 일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솔깃한 얘기다.

그의 행보가 단순히 `모국 사랑`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닌 듯 싶다.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기업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이번 구상이 현실화하면 그의 몫 역시 작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작 기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의 신속함이었다. 금융당국이 연내 중국 기업의 서울 상장 가능성을 시사한 직후여서 그의 `발빠름`에 놀랐다. 사실 3년 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국내 금융기관을 인수한 사모펀드들이 지난 해쯤 지분을 매각할 것으로 예상했고, 이는 그대로 적중했다.

앞서 외환위기 당시 홍콩에서 근무하던 그는 현지법인 한국인들에게 단기 차입의 위험성을 경고했으나 듣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단기 대외 유동성 악화는 외환위기의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미국 투자은행에서 들어가 10여년 만에 `충분한` 자금을 마련하고 나온 그는 한국 금융부문의 `느림`에 답답합을 표시하곤 했다.

월 가의 사모펀드 업계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그는 국내 토종펀드 붐에 대해서도 한 마디를 했다. "투자 대상이 줄어들고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될 겁니다. 왜 국제적인 사모펀드에는 투자하지 않는 지 모르겠군요."

`글로벌 스탠더드` 운운하며 외국 자본 규제론이 나오고 있다. 시장 교란 행위는 국적 불문 막아야 한다. 하지만 이 논란 자체가 `글로벌` 수준에 뒤쳐진 금융산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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