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盧대통령의 '솔직' 그리고 '외교적 수사'
노무현 대통령 하면 떠오르는 단어 중 하나가 '솔직'이다. 시쳇말로 '까발린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감추기보다는 드러내는 스타일이다.
이에대한 평가는 갈린다. 다만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있었던 권력의 신비스러움은 탈색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반면 외교가에서는 이런 '솔직함'이 오히려 '독'이 되지는 않을까하는 걱정도 적잖았다. 외교라는 게 '외교적 수사'를 통해 자신의 뜻은 애매하게 표현하고 상대방의 의중을 떠보는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우려는 종종 현실로 이어졌다.
외교적 수사나 애매한 표현 대신 정곡을 찌르는 노 대통령의 직설화법에는 세련미가 결여돼 있다는 비판도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외교를 '친교의 장'이 아닌 '이해와 토론의 장'으로 생각한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전언이다. 회담은 상대의 주장을 경청하고 자신 또는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장이라는 것. 특히 중요한 현안의 경우 노 대통령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고 한다.
'외교란 으례 그런 것'이라며 적당히 외교적 수사를 동원해 애매하게 넘길 수도 있겠지만 그런 문제일수록 특별히 집요하게 역점을 둬 설명하는 게 좋은 예다. 'OB는 OB라고 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3월말 독도 등 일본의 행태에 대한 대응으로 나온 '국민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
에서도 외교적 수사를 철저히 배제했다.
노 대통령 특유의 스타일에 이번에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완패(?)한 듯 하다. 코피 아난 총장은 유엔 개혁, 특히 상임이사국 증설 등 안전보장이사회 개혁을 화제에 올렸다가 노 대통령의 강의를 들어야 했다.
노 대통령은 "1945년 유엔 창설때 상임이사국은 정통성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진출하려는 국가들은 세계 평화를 위해 어떤 희생을 치렀고 어떤 도적적 정당성을 가졌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뒤 "지역을 대표한다고 하는데 아시아를 대표하려면 아시아의 지지를 받아야 하지 않겠나"라는 반어법으로 일본을 겨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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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 아난 총장이 일본을 의식한 듯 상임이사국 자격 기준으로 재정적 기여 등 유엔에 대한 기여도를 거론했을 때는 "기여금을 많이 낸다는 것이 전부인가"라며 일축했다.
정우성 외교보좌관은 "안보리 개혁 문제에 대해 대통령이 본인의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했다"고 설명했다. 코피 아난 총장과의 면담 자리를 ‘이해와 토론의 장’을 여긴 셈이다.
노 대통령의 강한 어조는 코피 아난 총장을 적잖이 당황케 한 것으로 보인다. 코피 아난 총장은 "솔직히 설명해 줘 고맙다. 솔직히 의견 교환을 하면 상대방 입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노 대통령의 '솔직'에 찬사(?)를 보냈다.
다만 코피 아난 총장의 감사 표현이 진심인지 아니면 '외교적 수사'인지는 확실치 않다.
노 대통령은 '이해와 토론의 장'으로 외교를 바라보지만 다른 이들은 여전히 '외교적 수사'가 오가는 장으로 여기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진심이 통한다'는 옛말이 맞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