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부동산 본위제' 유감
일본의 부동산 거품이 절정에 달했던 1980년대말 `토지 본위제(本位制)'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은행들이 땅을 담보로 엄청난 대출을 해주고, 이 자금은 땅값을 끌어올리고 거품을 키우는 촉매가 됐다. 곧 땅이 신용의 원천 또는 상징이 된 것이다. 이는 금 보유량만큼 화폐를 발행한 `금 본위제' 체제와 마찬가지로 `땅 본위제'로 부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얼마전 국세청에 적발된 무속인 김모씨의 사례는 `부동산 본위제'의 일단을 엿보게 한다.
김씨가 신고한 연소득은 1200만원. 하지만 부동산을 담보로 무려 134억원을 대출받아 강남에 아파트 36채를 보유했다. 김씨가 부담할 이자가 연 8억원으로, 신고소득의 67배에 달했지만 대출을 거부한 은행은 없었다고 한다. 부동산가치만큼 대출, 곧 신용창출이 이뤄진 만큼 `부동산 본위제'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금융기관들의 `부동산 본위제'준수(?)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올 3월말 현재 18개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136조원으로 1년새 13조원(10.4%) 급증했다. 같은 기간 기업대출을 포함한 총여신이 1.8% 늘어난 것과 비교된다. 주택담보 등 가계대출 비중은 48.2%로 산업대출 수준(51.2%)에 근접했다.
일본이나 국내 은행들의 이런 대출관행은 10년 이상의 시차를 두고 있지만 `부동산 불패신화'를 기반으로 한다.
일본의 경우 땅값은 86년까지 30년새 50배 이상 뛰었다. 가격이 떨어진 때는 한해였고, 소비자물가는 2배 올랐을 뿐이다. 땅값이 장기적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은 눈앞에 가격 급등세가 보이면 확신으로 바뀐다. 이때는 세금을 크게 올려도 투자붐이 꺾이지 않는다.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공황 직전 부동산담보대출이 크게 늘었고, 급기야 이를 금지하는 법안까지 만들어야 했다.
물론 부동산 가격의 일정한 상승은 자산효과를 통해 소비와 경기를 진작하곤 한다. 미국은 2001년 경기침체에 빠지자 금리를 내려 이 효과를 보았다. 하지만 모기지론 등이 미국 정도로 발전하지 않은 우리는 집값이 올라도 미국만큼 소비가 늘지 않는다. 부동산 가격의 오름세가 상당기간 문제가 됐는데도 소비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는 게 그 방증이다.
정부는 최근 부동산 가격 급등이 저금리에 편승한 투기적 가수요 때문이라고 보고 이를 차단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금리인상이 즉각적인 해법이겠지만 경제여건상 쉽지 않다. 총액한도대출 회수 등을 통해 유동성을 줄일 수 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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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담보대출을 억제하는 `부동산 본위제'의 해체는 검토할 만하다고 본다. `투기적 가수요'라는 정부의 원인 진단이 옳다면 그렇다. 하지만 단기적인 처방이다.
자금이 부동산이 아니라 보다 생산적인 설비투자 등에 투입될 수 있는 방안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장기 표류하고 있는 국책사업의 확정을 서두르는 것도 투자 제고 측면에서 부동산대책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