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성공한 정권의 딜레마?
"연정, 낙하산 인사…." 최근 청와대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이슈는 `혁신'을 강조해 온 참여정부의 이미지와는 영 딴판이다.
여당 실세이자 개혁과 원칙을 내세웠던 천정배 의원이 법무장관에 취임한 직후 검찰에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한 `합수부'가 설치된 것 역시 한국의 시계추를 한참이나 돌려놓은 듯하다.
야합을 연상케 하는 연정이나, 권력자의 분별 없는 측근 배려를 뜻하는 낙하산 인사는 15년 만의 합수부 등장만큼이나 `구시대'의 냄새를 짙게 만든다.
연정에 대해 "정치가 잘돼야 경제도 잘될 수 있다", 낙하산 인사의 경우 "지역구도 극복이라는 간절한 목표를 실천하는 과정" 등이라는 설명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임기 반환점을 앞둔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에 올인한 것"이라는 지적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노 대통령은 인터넷과 신세대를 지지 기반으로 지난 대선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이는 막대한 자금과 촘촘한 조직망으로 압축되는 기존 `당선 공식'을 깨뜨린 파격이었고, 변화와 혁신의 기대를 낳았다.
최근 기류 변화가 구질서를 업그레이드하는 차원의 `정치 올인' 탓이라면 노 대통령은 `성공의 딜레마'에 빠지지 않았나 싶다. `불확실한' 변화와 `검증된' 관행 사이의 갈등으로 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기업 혁신의 전도사로 불린 클레이튼 크리스텐스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가 90년대 후반 저술한 `성공기업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를 들춰보면 이런 딜레마는 새로운 게 아니다.
문제의 책은 세계 초우량 기업의 실패담을 `존속성 기술'과 `와해성 기술'로 분석했다. 최고의 기업들이 와해성 기술을 외면하다 뒤처졌다는 요지다.
존속성 기술은 주력시장에서 주고객의 기대수준에 따라 기존 제품의 성능을 높여주는 것이다. 와해성 기술은 기존 제품에 기능을 더하진 못하지만 새로운 고객들에게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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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백화점에 대항한 할인판매점,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제친 개인용 컴퓨터, 의료보험 회사를 압박한 건강관리 기관 등이 와해성 기술의 대표적 사례다.
IBM은 메인프레임 컴퓨터시장을 지배하고 있었으나 기술적으로 훨씬 쉬운 개인용 컴퓨터의 출현을 간과하는 바람에 이 시장의 주역이 되지 못했다. 미국 최대 백화점인 시어스가 할인점에 밀리다 결국 지난해 11월 K마트에 넘어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와해성 기술을 기존 고객에 맞추려다 좌절한 우량기업들도 있었다. 와해성 기술에 대한 시장예측이 어렵다는 점도 이런 실패에 일조했다. 크리스텐스 교수는 "존속성의 이익을 추구하고 예외적일 만큼 성공한 회사내 능력 있는 중역들이 최고의 경영기법을 사용하는 데도 점차 기업을 실패의 길로 이끌고 가는 것을 보았다"고 지적했다.
정치에 경영기법을 들이대고, 참여정부를 성공기업과 비교하는 게 적절치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낡은 캐비닛에서 케케묵은 자료를 끄집어 내려는 듯한 풍경은 존속성 기술에 집착하는 기업을 연상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