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누굴 위해 파업하나?" 조합원 반발, 울산시민 '싸늘'

지난 13일 오후 5시,현대자동차(485,000원 ▼32,000 -6.19%)울산공장에는 비가 내렸다. 오전부터 습기를 머금어 눅눅했던 날씨는 주간조의 교대시간이 되자 비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근로자들의 걸음이 빨라졌다.
"한미FTA 못 막으면 노동자의 내일은 없다."(소재생기사업부위원회), "6단 변속기 사업은 울산공장이 주도해야 한다."(변속기사업부위원회)
공장 입구와 식당 등에 놓인 노조 선전물에는 각 계파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FTA를 반대하는 정치적인 주장이 있는가 하면, 최신 기술사업을 독점하고자 하는 집단주의적 욕심도 있다. 각 계파가 지향하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주장도 다양한 셈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장은 조합원의 복지증진과는 밀접한 관련이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산별 중앙교섭 쟁취' 등의 글귀가 들어있는 현수막을 바라보거나 선전물을 집어든 조합원들의 표정은 건조했다. 몇몇은 선전물을 여러장 모아 머리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막기까지 했다.
이날은 때마침 현대차를 비롯한 완성차 4사 노조의 집행부가 금속노조의 정치파업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공장 전체가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현장에서 투쟁의 대세를 찾는 건 어려웠다.
올해 초 시무식 폭력사태 이후 이어진 성과금 투쟁 때만 해도 노조는 한목소리를 냈다. 물론 신노련 등 일부가 과잉투쟁을 지양하자고 반발했지만 이는 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해 초를 기점으로 상당수의 노조 조합원들은 집행부를 고운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지도부가 무리하게 이끈 파업으로 인해 시민전체의 인심을 잃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공장에서 만난 노조원 김 모씨(45)는 "노조 지도부가 주위의 민심을 읽지 못하고 있다"며 "밖에서는 현대차 노조원임을 숨긴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자랑스럽게 작업복을 입고 시내에 나가 저녁을 먹곤 했지만 이젠 퇴근때면 반드시 벗어놓는다"고 한다.

야간작업을 위해 출근하던 노조원 한명도 "집행부가 찬반투표를 한다고 하더니 약속을 어겼다"며 "노조원들의 동의없이 결국 자기들의 정치적인 이해만을 위해 파업을 강행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는 무조건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독자들의 PICK!
하지만 금속노조는 이날 저녁 늦게 싸늘한 현장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정치파업을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14일 다시 찾은 울산공장 차체라인 입구에서 만난 한 노조원은 "주위에 이번 파업을 찬성하는 사람을 하나도 못봤다"며 "이번에는 꼭 지도부에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공장의 한 관계자는 "시무식 사태 이후 불과 반년도 안돼 다시 파업이 일어나면 어렵게 올린 생산성이 다시 크게 떨어질 것"이라며 "현대차 노조가 선봉대도 아니고 노조 내부에서도 반대의견이 많은데 상위단체의 결정만으로 파업을 강행하는 건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울산 지역사회의 반응도 냉담하기는 마찬가지다. 시민들에게 현대차 노조는 이미 도시전체의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공적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루미늄 공장에서 일하다 퇴직 후 택시를 몰고 있는 김한용 씨(62)는 "나도 현장의 어려움을 알지만 요즘 같이 좋은 세상에 밥먹듯 파업을 일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붉은 조끼(노조단체복)를 입은 손님은 태우기도 싫다"고 말했다.
울산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올초에 이뤄진 시무식 파업을 기점으로 울산시민들은 현대차 노조에게 염증을 느끼고 있다"며 "이제는 노조가 어떤 주장을 펼쳐도 시민들에게 동의를 얻지 못한다"고 말했다. 울산지역 144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울산시민연합'의 한 관계자도 "현대차가 정치파업을 강행하면 현대차 공장 앞에서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가질 계획"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