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위기는 갑자기 오지 않았다

[광화문] 위기는 갑자기 오지 않았다

윤석민 국제경제부 부장
2009.09.18 07:01

위기는 어느날 불쑥 우리 곁에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성수대교도 그랬고, 삼풍백화점도 하루 아침에 무너지지 않았다. 설계, 시공 단계에서부터 관리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도사린 위험요소를 간과한 무책임이 화를 키웠다. 워낙 황당하고 참담했던 기억으로 인해 그 붕괴의 순간만이 세인들의 뇌리에 깊이 박힐 뿐이다.

지금 각 언론과 기관들은 리먼브러더스 파산 1주년을 맞아 ‘글로벌 금융위기 1년’에 대한 평가를 쏟아내고 있다. 리먼의 후폭풍이 한국 경제를 어떻게 흔들고,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제각각의 분석을 내린다. 대부분은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한 미국과 유럽계 금융의 급작스런 자금 이탈이 유례없는 외환위기를 불렀고, 한국은 이 가운데 모범적으로 위기 탈출을 선도하고 있다는 평가가 주류이다.

국제경제를 살펴보고 있는 입장에서는 다소 실소를 자아내는 대목들이다.

우선 위기 1년이라는 타이틀부터 받아들이기 힘들다. 꼭 집어 말하기 힘들지만 얼추 2007년 중반기가 위기의 시작점이다. 이미 영국 HSBC의 부실과 프랑스 BNP 파리바의 펀드 환매 중단 선언이 나오며 미 주택시장의 서브프라임 사태가 표면화한 이후이다.

이어 위기의 불길은 차상등급의 신용 시장으로 번지며 파괴력을 더했다. 급기야 지난해 3월 미 5대 투자은행(IB) 베어스턴스가 쓰러지고 반관영 모기지업체인 패니매와 프레디 맥마저 맥없이 나가 떨어졌다.

이 가운데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은 그 정점에서 일어난 일개 사건일 뿐이다. 더 이상 정부(국민)에 기대는 금융권의 무책임을 좌시할 수 없다는 미 금융당국의 강력한 의지 표명이 있었다. 그러나 그 속내로 들어가면 더 이상 위기의 통제가 불가능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3년 해묵은 종기가 누런 고름을 쏟으며 터진 격이다.

이에 따라 리먼 쇼크가 쓰나미처럼 갑작스레 우리를 덮쳤다고 말하면 어불성설이다. 물론 위험회피 자산이 썰물처럼 빠지며 우리의 의도와는 다르게 속절없이 당한 측면도 없지는 않다. 그렇다면 10년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의 교훈을 잊은 책임당국과 관계기관의 건망증을 탓할 수밖에 없다.

그 사이 세계화는 보다 진전되고 우리 금융 시스템을 비롯한 경제 역시 글로벌 체제에 더욱 얽혀 들었다. 한 쪽에서 당긴 방아쇠(트리거)가 바로 큰 파동(리플 이펙트)을 일으키는 ‘글로벌라이제이센’의 한 가운데 위치해 있다. 3년간 곳곳에서 단면을 드러내던 위기의 징후들을 감지하지 못하고, 그에 대한 대비를 세우지 못했다면 지독한 직무유기일 것이다.

그나마 IMF사태로 내성을 키운 점은 불행중 다행이다. 북한의 댐 방류 사건에서 이슈가 됐던 댐 수위 문제와 비슷한 사안이다. 미국의 금융권이 무자격자(서브프라임)에게도 마구 대출을 늘렸던데 반해 우린 그나마 마구잡이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새삼 이를 문제시 삼는 것은 똑 같은 우(愚)를 범하지 말자는 취지이다. 진단이 틀리면 처방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금융위기 발생후 자산 버블을 간과했다고 고백한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최근 위기는 또 온다고 경고했다. 인간 본연의 탐욕이 시장을 지배하는 한 버블은 커지고, 이는 반드시 터지기 때문이다.

금융위기의 진원지 월스트리트는 이미 과거를 잊은 모습이다. `실패한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로 단정지어졌던 IB는 다시 돈을 쓸어담고 그의 종사원들은 거액 연봉, 보너스의 돈 잔치를 벌인다.

'1년 위기'를 정리한 우리 역시 들떠 보이기는 매 한가지이다. 그리고 그 간의 고통도 잊어가는 것 같다. 또 잊는다면 위기는 '고양이'처럼 우리곁에 다시 다가올 것이다. 그 것이 세상의 이치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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