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넥타이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시골에서 넥타이를 맨다는 것은 사회의 가장 높은 자리를 의미했다. 면서기, 학교 선생님, 농협 직원 등. 그래서 우리 엄마의 꿈은 자식들이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것이었다. 넥타이를 맨 아들을 보면 지금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지난해 삼성이 넥타이를 매지 않는 '노타이'를 선언했다. 역시 글로벌 기업다운 변화였고, 사회적으로도 상당한 메시지를 던졌다. 하지만 여전히 넥타이는 힘을 과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주 월요일, 지난 28일부터 공무원들이 넥타이를 매지 않고 출근하도록 복무 규정이 바뀌었다. '보수중의 보수' 공무원이 노타이를 부르짖고 나선 것이다.
가히 혁명적인 변화다. 이번 선언의 파장은 삼성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은 물론 산하기관, 공기업 등까지 이같은 분위기가 확산되고, 이는 곧 이들을 상대해야하는 민원인들도 넥타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먼저 국장급 이상 간부들이 솔선수범하라는 지시다. 지난 여름 에너지절약의 일환으로 넥타이를 매지 않도록 했을 때에도 외부행사가 많은 간부들은 대부분 넥타이를 매고 다녔다. 정부가 복무규정까지 바꿔 '노타이' 부르짖기에 나선 바에야 국무회의에서부터 넥타이를 몰아내자고 제안하고 싶다. 장.차관이 매고 다니면 밑에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넥타이를 매지 않는 것이 녹색성장의 일환이라는 얘기도 없지 않다. 체감온도를 낮춰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뿐 아니라 그에 따르는 여러가지 '열나는 행위'를 줄 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넥타이를 매는데 드는 시간이라든가 넥타이를 세탁한다던가 넥타이를 다린다던가 등등.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것이다. 넥타이를 매면서 즐거운 사람이 있을까. 그냥 그저 기계적으로 넥타이를 매고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단 우리 편집국에도 한분 있듯이 넥타이가 패션의 일부인 경우는 제외다. 그분들의 넥타이는 우리가 지금 논의하는 '넥타이'에서는 제외다. 청바지에 넥타이를 매는 부류.
넥타이를 벗어 던진다고 해서 당장 창의적인 사고가 나오고, 사회가 한층 발전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나의 통일된 복장체계, 의식체계에서 벗어나는 의미다.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하나의 틀을 깨는 것은 개인으로의 진전이다. 개인의 가치를 존중하는 하나의 작은 움직임 일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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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를 '나'의 상대개념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짙다고 한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상대방에 대한 공격성은 이에 기인한다. 내 잣대가 아니라 '우리'라는 잣대로 상대방을 무한 공격한다. 그래서 맘껏 신랄하게 꾸짖을 수 있다. 물론 상대방의 상처가 어떻든 자신은 절대 상처를 받지 않는다. '우리'의 대표로서 공격했기 때문이다. 그저 총대를 멨을 뿐이다.
최근 열린 청문회를 되돌아보면 이해가 빠르다. 자기가 위장전입 했음에도 상대방에게는 어떻게 그렇게 심하게 비난할 수 있는 것인가. 자신의 도덕성이 아니라 국민을 대신하는 국회의원이라는 허울좋은 완장 때문인가. 후안무치다.
우리의 잣대가 아니라 나의 잣대, 개개인의 잣대가 많아져야 한다. 어느 회사의 '나', 어느 직종의 '나', 어느 지역의 '나'가 아니라 스스로인 '나'에 대한 생각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서로 이해하고 보듬어 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