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가진 자들의 오블리제

[기자수첩]가진 자들의 오블리제

엄성원 기자
2009.10.21 15:46

월가가 다시 시끄럽다. 이번엔 내부자 거래다.

거대 헤지펀드 중 하나인 갤리온그룹의 공동 창설자인 라즈 라자라트남 회장의 내부자 거래 사실이 지난주 미 검찰에 의해 들통이 나면서 월가가 다시 불신과 원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IBM, 인텔, 맥킨지 등 글로벌 대기업의 고위 경영진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그들만이 접근할 수 있는 기업 정보와 회계 정보로 자신의 배를 불려온 총체적 부패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들은 모두 성공한 사람이다. 경제적 지위에서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에서도 모두 일반의 부러움을 살 만한 사람들이다. 지난해 월가를 발칵 뒤집어놨던 폰지사기 사건의 주인공 버나드 메이도프 역시 마찬가지다. 메이도프는 나스닥 초대 이사장이자 월 스트리트 최대 증권 브로커 중의 하나였다. 그는 자신의 명성과 그에 기댄 투자자들의 신뢰를 이용, 650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꿀꺽했다.

요즘 한국시리즈가 한창이지만 가끔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는 팀이 번트를 대거나 지나치게 투수를 자주 바꾸는 것이 발단이 돼 불미스런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이기는 팀 입장에선 승부를 더욱 깔끔하게 매듭 짓기 위해 또는 상대의 추격 의지를 완전히 꺾어놓기 위해라는 나름의 이유가 있긴 하겠지만 지는 팀이나 팬들의 입장에선 충분히 '열 받을' 만한 일이다. '10대 0'이나 '11대 0'이나 승부를 뒤집기 힘든 건 매한가지고 이 때문에 '10대 0' 상황에서 이기고 있는 팀의 감독이 보내기 번트를 지시할 때 팬들은 야유하고 상대팀은 복수(?)를 준비하기도 한다.

라자라트남이나 메이도프가 평범함 사람들보다 더 많은 비난과 조롱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그간 이룬 성공과 이로 인해 보장된 사회적 지위를 토대로 이미 '10대 0'으로 앞서고 있었지만 1점을 더 내기 위해 짊어진 의무와 책임을 무시한 셈이다.

둘 모두 잘못하긴 마찬가지지만 월 100만원 버는 사람이 저소득자에게 주어지는 사회 보장 혜택을 받기 위해 소득을 실제 이하로 신고하는 것과 1000만원 버는 사람이 그러는 것이 같을 순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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