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삼성전자, 위대한 기술기업의 40년 여정(2)
#"삼성전자(216,000원 ▼1,500 -0.69%)가 액정표시장치(LCD)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제품 생산을 시작했고, 앞으로 열심히 사업을 해 나갈 것입니다."
1995년 일본에서 열린 제 2회 'FPD(Flat Panel Display International) 인터내셔널' 전시회. 이상완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LCD사업부장(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장)이 NHK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긴장된 목소리로 LCD 사업의 출발을 알렸다. 그로부터 꼭 10년 후인 2005년 이 원장은 세계 1위 LCD 업체의 대표 자격으로 FPD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삼성전자의 LCD 부문 매출이 올해 처음 100억 달러를 넘어서고, 2010년에는 2배인 200억 달러를 돌파할 것입니다."
LCD 사업은 삼성전자 40년 역사에서 가장 빠르게 세계 1위를 이뤄낸 분야로 꼽힌다. 1995년 양산을 시작한 이래 불과 4년만인 1998년 세계 정상에 섰다. 반도체 사업의 성공에서 쌓은 기술력, 삼성 특유의 빠른 의사결정과 미래를 내다보는 과감한 투자 등이 '삼성 LCD 성공'의 비결이다. 무엇보다 반도체 신화를 일궈낸 '반도체 엘리트'들의 경험과 열정이 밑바탕이 됐다.

◇삼성의 1호 신수종 사업= 삼성전자가 계열사인 삼성전관(현 삼성SDI)으로부터 LCD 사업을 이관해올 때 일이다. 이윤우 당시 반도체총괄 상무(현 삼성전자 부회장)가 한 후배를 불렀다. 그는 "LCD 쪽에서 한번 일을 해보라"고 권했다. 이 후배는 "(LCD에 대해) 잘 모른다"며 자신 없어 했지만, 이 부회장은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관련 서적을 몇 권 넘겨줬다.
LCD의 기초기술이 반도체와 유사하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기 전 일이었다. 후배는 책을 읽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고, 91년 LCD 사업을 담당하는 특수사업부로 발령이 났다. 이후 18년째 삼성 LCD의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바로 장원기 현 LCD 사업부 사장이다.
1991년 1월 삼성전관으로부터 LCD 사업이 넘어온 초기에는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기술 장벽은 높고 사람은 없었다. 낮은 수율, 높은 원가로 수년간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당시에는 샤프, 도시바, NEC, 마쓰시타 등 일본 업체들이 세계 LCD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며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들은 반도체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술 이전을 용납하지 않았다.

조직원들 간의 융화도 문제였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인력, 삼성전관의 LCD 담당자 등 여러 계열사 사람들로 이뤄진 팀은 마치 외인부대 같았다. 가정 방문, 호프 데이 등 '스킨십'을 위한 행사들을 수없이 가졌다. 서서히 삼성 특유의 조직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93년 16년간 반도체에서 잔뼈가 굵었던 이상완 원장이 LCD를 맡으면서 사업은 한층 힘을 받기 시작했다.
독자들의 PICK!
95년 2월 착공 1년 2개월 만에 370*470㎜ 사이즈의 기판을 생산하는 기흥 양산 1라인이 완공됐고, 1996년에는 MLB(다층인쇄회로기판), 부품 칩 등과 함께 LCD가 삼성그룹의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됐다. 삼성에서 신수종 사업을 선정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머뭇거리는 일본, 삼성의 기회= 기회는 곧 왔다. 95년 일본 업체들이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 감량경영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공격적인 투자 방침을 세운 삼성은 11.3인치 패널이 아닌 12.1인치를 주력으로 2라인 건설에 들어간다. 양산 2 라인 투자 당시 표준 사이즈는 10.4인치, 일본 업체들은 차기 표준으로 11.3인치로 보고 투자를 진행하고 있었다. 경쟁사가 만들어 놓은 표준을 계속 따라 간다면 언제나 2류 업체에 머물게 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LCD 사업은 생산성 있는 기판 사이즈를 확보하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 제품의 크기가 몇 인치로 옮겨가는가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그에 맞는 기판을 사용하는 라인을 건설하는 것이 관건이다.
당시 세계 1위 노트북 업체였던 일본 도시바와의 공조가 큰 도움이 됐다. 96년 2라인 준공과 함께 12.1인치가 대량 생산됐고, 6개월 만에 일본업체가 닦아 놓은 11.3인치 시장을 12.1인치로 전환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세계 LCD 시장에 '삼성'이라는 이름이 확실하게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1996년 가을. 이 원장은 양산 3라인 투자 결정을 앞두고 다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기판 사이즈를 590*670㎜로 하느냐, 600*720㎜로 하느냐를 두고 연일 격론이 벌어졌다. 둘 다 새로운 주력인 제품으로 예상되던 13.3인치 패널을 6장씩 생산할 수 있었지만 14.1인치 패널 마진 확보에서 차이가 있었다. 현재 주력 제품은 12.1인치. '차차세대' 제품까지 염두에 둔 투자를 하느냐, 안정적인 투자를 선택하느냐의 기로였다.
삼성은 결국 위험이 따르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를 택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998년 2월 천안 3라인 양산과 동시에 노트북 PC 시장의 주력 제품이 13.3인치로 전환돼 삼성 LCD가 양산 4년 만에 세계 1위가 오르는 쾌거로 이어졌다. 2000년부터는 14.1인치가 표준이 되면서 3라인의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었던 것도 물론이다.
이 후에도 4, 5, 6라인의 공격적인 투자로 모니터 부문 17인치와 19인치 표준화를 선도하는 등 표준화 경쟁을 주도하며 업계 리더십을 확고히 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1등의 길= 2000년 대 초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와 잠시 세계 1위 자리를 다퉜던 삼성전자는 2002년 이후 한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두 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
먼저 '탕정 크리스털밸리 시대'의 개막이다. 기흥에 1,2 라인, 천안에 3~6라인을 세웠던 삼성전자는 2004년 이후 7라인부터 탕정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탕정 LCD 단지는 61만 평의 부지에 2010년까지 20조 원을 투자한다는 목표로 설계됐다.
특히 5세대(1100*1300mm) 기판에서 6세대를 건너뛰고 7세대(1870*2200mm), 8세대(2200*2500㎜) 등 대형 라인 투자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이는 급성장하는 40인치 이상의 대형 TV용 패널 시장을 주도하는 계기가 됐다.

같은 해 있었던 일본 소니와의 합작 결정도 삼성 LCD의 1등 위치를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세계 1위 TV 업체였던 소니와의 연합은 대형 수요처를 얻고 향후 TV 크기의 표준 경쟁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효과가 있었다. 지난 2004년 출범한 삼성과 소니의 합작사인 S-LCD는 7세대와 두 번에 걸친 8세대 투자를 성공적으로 단행했다. 최근 소니가 샤프와 10세대를 투자를 합작하면서 공조에 변화가 오고 있지만 중국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중국 현지에 7.5세대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 LCD의 성공 배경에서 기술력도 빼놓을 수 없다. 95년 양산에 들어간 지 2,3 년만에 도시바, 소니, 미쓰비시 등 까다로운 일본 업체들에 패널을 공급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반도체 사업에서 쌓은 기술력이 LCD로 이어진 결과다. 최근에는 에지형 발광다이오드(LED) TV용 패널을 최초 양산하는 등 혁신적인 제품에서도 선도적인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디지털정보디스플레이(DID, Digital Information Display) 시장에서도 지난 2분기에 처음으로 1위에 올라섰다.

◇제 2의 LCD 신화는= 지난 26일 기흥에 있는 삼성 LCD 1,2 라인을 찾았다. 20미터를 약간 넘는 높이의 건물로 높이만 60미터에 달하는 탕정의 7,8세대 라인에 비하면 아담한 크기였다. 옆으로 개발 라인과 사무동이 함께 위치해 다소 빽빽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현재 1라인은 연구개발 라인으로 사용되고, 2라인은 중소형 LCD와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사업을 맡은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로 넘어갔다.
삼성 LCD가 출발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삼성의 차세대 디스플레이를 이끌어갈 SMD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입구에 나란히 위치한 '삼성전자'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두 회사의 간판이 창립 40주년을 맞은 삼성전자의 저력을 보여주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