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삼성전자, 위대한 기술기업의 40년 여정(1)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5가지 이유.'
지난 1983년 일본 미쓰비시 연구소가 공격적인 보고서 하나를 발표했다. 그 해 2월 8일 삼성 창업자인 호암 이병철 선대 회장이 일본 도쿄에서 '왜 우리는 반도체 사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도쿄선언문'을 발표한데 대한 반응이었다.
삼성이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기 전인 1971년에 세계 반도체 시장은 집적회로(IC)를 개발한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가 1위, 모토롤라, 페어차일드, 내셔널세미컨덕터(NS), 시그네틱스, NEC, 히다찌, 아메리카 마이크로시스템, 미쓰비시, 유니로이드 등이 톱10을 형성했다. 미국 기업 7개에 일본 기업 3개가 반도체시장을 나눠 점령하고 있었다.
일본 반도체의 전성기였던 1991년에는 NEC, 도시바, 히다치가 세계 1~3위를 휩쓸었고, 후지쯔, 미쓰비시, 마쓰시타 등 6개 일본 기업이 세계 톱10을 차지했다.


◆삼성의 무모한 도전?=세계 반도체 톱10인 미쓰비시 연구소는삼성전자(216,000원 ▼1,500 -0.69%)의 도전에 대해 △한국의 작은 내수시장, △취약한 관련산업, △부족한 사회간접자본, △삼성전자의 열악한 규모, △빈약한 기술 등 5가지 이유를 들어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성공할 수 없다며 냉소를 보였다.
삼성이 D램 사업에 진출할 당시의 분위기는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82년 KDI는 보고서를 통해 "반도체는 인구 1억, GNP 1만 달러, 내수판매 50% 이상이 가능한 국가에서 할 수 있는 산업으로 기술, 인력, 재원이 없는 우리에겐 불가하다"고 평가했다.
1982년 당시 청와대에서조차 "반도체 같은 불확실한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가 실패하면 국민경제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당분간 사업 자제를 요청할 정도의 분위기였다.
26년이 지난 지금 미쓰비시연구소는 현재의 삼성전자 반도체를 어떻게 평가할까. 그 답은 시장이 말해준다. 당시 삼성의 반도체 사업 진출을 비웃었던 미국 일본 반도체 기업들 가운데 상당수가 시장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세계 시장을 평정했다.
현재 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의 인텔(비메모리)이 1위, 삼성전자(메모리 1위)가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도시바, TI, ST마이크로, 퀄컴, 르네사스(미쓰비시+히다찌), 하이닉스, 인피니언, AMD 등이 10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993년 이래 16년간 메모리반도체 1위를 이어오고 있는데 반해 일본 기업으로는 도시바가 자존심을 지키고 있고, 미쓰비시와 히다찌는 합작을 통해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삼성 반도체의 작은 첫 걸음..큰 족적=오는 11월1일로 창립 40주년을 맞는 삼성전자가 오늘날의 글로벌 기업으로 부상하기까지 '반도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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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반도체 사업에는 두 가지의 시발점이 있다. 하나는 1974년 이건희 당시 동양방송 이사가 사재를 털어 한국 최초의 반도체 가공라인(팹)을 갖춘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것이다. 또 하나는 이병철 선대회장이 1983년 D램 사업 진출을 선언한 '도쿄선언'이다.
1974년 미국 모토로라 연구소 출신의 강기동 박사가 설립한 한국반도체를 인수할 당시 삼성의 경영진들은 '반도체 사업'에 대해 주목하지 않았고, 이건희 전 회장이 여러 번 설득했음에도 삼성의 반도체 진출이 어려워지자 자신의 재산을 털어서 인수했다.
1975년 한국반도체가 국내 최초로 개발한 전자손목시계용 반도체는 박정희 대통령의 VIP 선물용 시계에 탑재됐다. 이 시계에는 '대통령 박정희'라는 이름이 새겨져 VIP들에게 제공됐을 정도로 국내 최초로 개발된 반도체에 대한 박 대통령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이건희 전 회장은 지난 2004년 반도체사업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장에서 "반도체 사업 진출 당시 경영진들이 `TV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너무 최첨단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만류했다"고 회고했다.
이 전 회장은 당시 천연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나 기업이 앞으로 살아남을 길은 머리를 쓰는 하이테크 산업 밖에 없다고 생각해 과감히 투자를 결정했다며 반도체 사업의 진출 결정 당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 D램 시장 진출에는 더 많은 난관이 있었다. 정치 사회적으로 불안했던 70년과 80년을 거치면서 우리 경제는 20년만에 GNP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이병철 회장은 이 위기상황에서 "뭔가 남다른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80년 초부터 미국 HP, IBM 등을 돌아보고 관계 인사를 만나면서 '반도체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다졌다.
그의 결심에 가장 영향을 미친 사람은 일본의 경제학자 '이나바 슈조' 박사였다. 그는 이 회장에게 "자원보다는 기술에 의존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하이테크를 해야 한다"고 강조해 이 회장의 결심을 굳히게 했다. 이 회장은 1983년 2월 18일 메모리 사업진출을 선언 후 국내 최초 64K D램 개발이라는 첫 난관을 만났다.

◆64km 행군으로 일궈낸 첫 반도체 개발=107명으로 64K 디램 개발팀이 꾸려졌지만 반도체를 만들어본 경험도, 전문지식도 거의 전무해 자신감도 부족했다. 107명의 개발팀은 무박2일간로 64km 행군하며 앞으로 벌어질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해 정신력과 체력, 굳건한 팀웍을 다졌다.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똘똘 뭉친 지 9개월만인 11월 10일 한국 최초의 64k D램이 개발됐다.
이어 약 1년만인 1984년 세계 3번째로 집적도 4배를 높인 256K D램을 개발하자 세계가 놀랐다. 미국의 원조로만 사는 한국인 줄 알았는데 세계에서 3번째로 256K D램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삼성의 기술 선도력 이어져 1992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초 64M D램 개발(당시 팀장 권오현 삼성전자 현 반도체 담당사장) 이후 삼성은 늘 세계 최초 메모리를 개발해오고 있다.

기술이 없는 삼성의 투지가 보여지는 대목도 있다. 첫번째 라인을 건설할 당시의 일이다. 기술개발과 생산 시스템을 동시에 갖추는 상황에서 수억원의 스텝퍼(노광장비) 장비를 이송할 당시 이 장비가 충격과 진동에 매우 약한데 이송 과정의 도로가 비포장이었다고 한다.
당시 이에 대처하기 위해 기흥 공장 주변 도로 보수 공사를 진행했는데, 장비 입고 시간이 다가오는 오전 10시 전까지만 해도 비포장 도로였던 공장 진입로 4km 구간은 자갈밭이었다.
전 직원이 힘을 모아 몇 시간만인 오후에 장비가 들어올 때는 4km의 구간이 말끔히 포장돼 장비 이송을 원활히 하고 최초 D램을 개발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한 일화는 유명하다.
도쿄선언 이후 10년 만인 1993년 삼성은 메모리 세계 1위에 올라 현재까지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승부수=삼성은 결정적인 순간에 이건희 전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들의 결단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영광을 안았다.
권오현 삼성전자 반도체담당 사장은 삼성 반도체의 성공요인은 무엇보다 오너의 결단 없이 불가능했다고 단언한다. 일본 히다찌, 도시바 등의 전문경영인들이 투자 타이밍을 놓치고 있을 때 삼성은 호ㆍ불황에 흔들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투자해 판세를 뒤집어 놓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당시 반도체 업체들은 대부분 5인치 라인을 운영하고 있었다. 선두기업들만이 대규모 투자를 통해 6인치 라인을 운영했다. 삼성은 과감히 6인치 라인을 건설키로 결정했다.
이외에도 반도체 제조공정 전체를 완전히 바꾸는 리스크를 안는 결정, 누구도 가지 않았던 세계 최초 8인치 라인에 대한 도전 등은 오너의 결단이 아니면 어려운 과제였다.
일본 기업들이 90년대 중반 메모리 사업에서 철수했다. 불황기에 과감한 투자나 결단을 하는 오너 경영과 달리 1~2년 앞만 볼 수밖에 없는 전문 경영인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또한 2001년 낸드플래시 사업 진출 당시에도 도시바와 손잡을 것이냐를 고민하다가 단독을 낸드플래시 개발에 나섰고, 이를 계기로 도시바를 제치고 2004년 낸드플래시 세계 1위에 올랐다.
삼성 반도체는 1984년 이후 지난해까지 연 27%의 성장률과 누적이익 42조원을 달성했다. 영업이익률은 제조업에서는 보기 힘든 연평균 23%를 기록했다.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의 성장 40년 중 가장 화려한 영광이 반도체로부터 시작됐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올해 매출 166억달러에서 2012년에는 255억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 반도체의 제2의 신화 도전이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