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변호사들에게 빌미 준 상장사

[기자수첩]변호사들에게 빌미 준 상장사

김희정 기자
2011.04.19 07:58

지난 13일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OCI(옛 동양제철화학)의 사외이사직을 중도 퇴임했다. 지난달 보석신청이 기각되자 취한 조치로 보인다.

천 회장은 2001년 OCI가 자신이 설립한 제철화학을 인수합병한 이래 10년간 OCI의 사외이사직을 맡아왔다. 제철화학의 설립자였던만큼, 인수회사인 OCI에 품었을 애정은 남달랐을 터다.

하지만 지난해 총 12번의 이사회 중 천 회장이 참석한 건 두 번뿐이었다. 대출 로비 및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데다 검찰소환을 피해 아예 일본에 머물기까지 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OCI가 사외이사들에게 지급하는 보수는 연간 1인당 5420만원에 달한다. 1년간 달랑 두 번 참석한 천 회장이 보수를 거부하지 않았다면 1회당 2710만원의 '거마비'를 받았다는 뜻이 된다.

그가 사외이사직을 맡았던 또 다른 기업인휴켐스(18,890원 ▼60 -0.32%)도 별반 다르지 않다. 천 회장은 박연차 태광그룹 회장이 2006년 농협 자회사인 휴켐스를 인수한 후부터 2009년 초 중도 사임할 때까지 휴켐스 사외이사직을 맡았다. 사임 직전 해인 2008년 이사회에 참석한 횟수는 7번, 출석률은 58%에 그쳤다.

사외이사추천위원회가 어떤 기준으로 사외이사를 추천하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휴켐스의 경우 농협으로부터 인수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일자, 50년 지기인 천 회장에게 박 회장이 사외이사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주주와 이해관계에서 자유롭고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감시·비판해야 할 사외이사가 이런 식으로 뽑히고 있다. 최대주주에게 사외이사란, 믿고 맡길 동향형님 내지는 정권에 줄을 대기 편한 정치적 마당발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상장기업에 '준법지원인' 명목으로 변호사를 의무적으로 채용하도록 하는 상법 개정안이 지난달 어물쩍 국회를 통과해 발효됐다.

변협을 중심으로 로비를 통해 확실히 '제 밥그릇'을 챙겨낸 변호사들은 고개를 꼿꼿이 들고 "투자자의 권리보호를 위해…"라고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변협도 볼썽사납지만, 사외이사제도를 이처럼 제 멋대로 운영해온 상장사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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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기자

안녕하세요. 스토리팀 김희정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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