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국회통과를 위해 결국 정부가 물러서는 양상이다. 여야가 비준안 통과 전제조건으로 요구한 축산농의 목장부지 양도세 면제 문제다. 정부는 양도세 면제는 원칙에 위배되고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반대해 왔다. 하지만 '안되면 의원 입법이라도 하겠다'는 정치권의 으름장에 결국 손을 들고 말 모양이다. 정부는 27일로 예정된 국회와의 협의 테이블에 양도세 면제 방안을 올려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초 주택 취득세 감면에 따른 지방자치단체 세수 감소분 보전 때도 마찬가지였다. 보전 방안을 놓고 정부는 합리적인 수준에서 보전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결론은 '지자체의 완승'이었다. 4·27 보선을 앞두고 지방 민심에 민감했던 정치권이 지자체 요구를 100% 수용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23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정부는 선거를 앞두고 쏟아져 나올 포퓰리즘적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며 '전의'를 불태웠지만 올 들어 벌써 2전 전패인 셈이다.
정치권은 한-EU FTA로 인한 소규모 농가 피해를 보상해 줘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소규모'라는 단어가 약자를 연상시키지만 축산농의 지난해 연평균소득은 4218만 원으로 특작, 과수, 채소, 논벼 등 전체 농가 중 가장 높다. 수도권 농가라면 그동안 땅값 상승도 적지 않은 규모였을 것이다.
'소규모' 농가만 지원할 현실적 방법도 없다. 면제 기준을 농장 면적 661.16m² 이하로 제한한다고 해도 형평성 문제 때문에 그 이상 규모의 농장에도 같은 면적까지는 면제해줘야 한다.
한-EU FTA가 발효돼도 EU산 쇠고기는 미국, 호주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져 당분간 수입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돼지나 닭 키우는 농가만 혜택주고 소 키우는 농가는 제외하기도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원칙의 훼손이다. 공평하게 적용돼야 할 세제에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비슷한 요구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한-EU FTA 피해가 대부분 축산농에 집중돼 있지만 그렇다고 과실이나 수산물 쪽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축산농은 지원해 주고 왜 다른 농가는 지원하지 않냐고 하면 거절할 명분이 없다. 정치권은 이렇게 해 놓고 국정감사 계절이 오면 정부를 상대로 또 '재정건전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질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