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동반성장'? 불성실공시 낙인만

[기자수첩]'동반성장'? 불성실공시 낙인만

심재현 기자
2011.07.20 07:11

동반성장 얘기가 나오자 코스닥업체 E사 대표는 한숨부터 쉬었다.

헛구호, 공염불, 상대적 박탈감…정부의 중소기업 대책이 나온 뒤면 바늘에 실 가듯 뒤따랐던 익숙한 단어가 쏟아졌다.

E사는 지난해 하반기 대기업 K사와 600억원짜리 계약을 맺었다. 전년 매출의 70%에 달하는, 오랜 실적 가뭄 끝의 단비였다. 실적 부진 압박에 주가까지 반토막 났던 밑바닥에서 몸은 바빠졌지만 마음은 가벼웠다고 했다.

들뜬 기분은 반년을 채 못 갔다. K사는 시장 상황을 이유로 계약 이행을 늦췄다. 그 사이 수백억원에 달하는 자재 재고와 금융 비용 부담은 고스란히 E사가 떠안아야 했다.

시장 자체가 3개 대기업이 나눠가진 과점 형태라 다른 판로를 찾을 수도 없는 실정. 변변히 항의도 못 했다. 행여 미운 털이 박히기라도 하면 퇴출을 각오해야 할 판이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K사 한마디면 죽는 시늉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E사에 부품을 댔던 30여개 하청업체 사정은 더 급했다. 경영 상황이 부실했던 일부 업체에선 직원들 월급도 제때 못 줄 지경이었다. 그래도 E사 탓은 안 했다. 계약에 계약이 맞물린 피라이드 구조에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E사는 K사 요구로 200억원짜리 계약을 새로 맺었다. 기존 계약에 대한 K사의 책임을 '없던 일'로 하는 대신 새 계약 등을 통해 앞으로 600억원에 상응하는 매출을 보장하겠다는 '제안'이었다고 한다. 울며 겨자먹기였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계약 내용을 공시하자 한국거래소가 문제를 삼았다. 정정공시에서 계약금액이 50% 이상 변경될 경우엔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다. 몇 차례 해명에도 불구하고 E사에는 결국 불성실공시법인 '딱지'가 붙었다. 당일 주가는 3% 넘게 떨어졌다. K사와의 재계약 협상 과정에서 정정공시가 늦어진 것도 '괘씸죄'로 작용했다.

E사 대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있는 곳이라면 관례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일상"이라고 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거나 지정예고된 상장사 상당수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이달 들어서도 S사가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예고됐다.

정부는 올해 들어 상생을 내세우며 중소기업 살리기에 올인하고 있다. 집권 여당 안에서 초과이익환수제 같은 급진적인 방안이 논란이 될 정도다. 공정거래위원회와 동반성장위원회는 중소기업 피해 사례도 접수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뜬 구름만 잡지 말고 기본부터 지키게 해달라는 하소연이다. 애초부터 정부가 상생 의지가 없이 '쇼'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 왜 끊이지 않는지 고민해볼 문제다.

E사 대표는 인터뷰 내내 답답함을 털어놓으면서도 "회사이름이 기사로 나가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신신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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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현 특파원

머니투데이 뉴욕 특파원입니다. 뉴욕에서 찾은 권력과 사람의 이야기. 월가에서 워싱턴까지, 미국의 심장을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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