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돼지, 증거금 우물에 빠지다

[기자수첩]돼지, 증거금 우물에 빠지다

김성호 기자
2011.12.26 06:48

"거래가 전혀 없는데 투기적 거래를 잡는다고 증거금률을 올리는 게 말이 됩니까?"

얼마전 한국거래소가 돈육선물 증거금률을 인상하자 한 선물사 직원이 한 말이다. 가뜩이나 거래량 부족으로 상장폐지 위기에 놓였는데 기초자산의 가격변동성 확대로 투기 거래가 우려된다고 해서 증거금률을 인상한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얘기다.

거래소는 돈육 선물 증거금률은 기존 현행 12%에서 14%로, 위탁증거금률 은 18%에서 21%로 각각 상향조정했다.

거래소는 내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매 분기 상품선물의 기초자산 가격 변동성을 기초로 증거금률을 조정하고 있다. 전 분기 돈육선물 증거금률은 거래증거금률의 경우 14%에서 12%로, 위탁증거금률은 21%에서 18%로 각각 인하됐지만 이번 인상과 함께 제자리로 돌아갔다.

통상 거래소가 증거금률을 인상하는 이유는 기초자산의 가격변동성이 확대되면 투기적 수요가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FX(외환)마진선물의 증거금률을 대폭 인상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돈육선물은 얘기가 다르다. 구제역 살 처분으로 씨돼지 공급이 부족해지고 이로 인해 돈육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가격변동성이 확대됐다고는 하지만 현재 돈육선물의 거래량을 보면 투기적 거래를 운운할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육선물 거래량은 올 초까지 매월 일평균 30~60계약에 그쳤다.

그나마 지난 7월 유일하게 시장 조성에 참여해 온 NH선물이 '최초 상장된 상품선물의 경우 최초 3년간만 시장조성 호가를 제출할 수 있다'는 거래소 규정에 따라 더 이상 유동성 공급자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되면서 이후 거래가 아예 끊겼다.

돈육선물이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자 급기야 거래소는 외부 연구기관에 연구용역까지 의뢰하면서 돈육선물 살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상품 자체의 존폐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이번 증거금률 인상은 의미도 없을 뿐더러 그나마 있던 거래마저 끊기게 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거래소는 내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모든 상품선물에 적용되는 것이다보니 돈육선물에만 예외를 둘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거래가 있어야 상품도 존재한다.

우선 거래량 부족에 시달리는 상품은 거래부터 활성화시킨 후 투기거래를 우려하는 것이 앞뒤가 맞다.

거래소는 주식시장, 파생상품시장의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따라서 내부 규정을 엄격히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상품과 투자자가 시장을 구성하는 기본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시장을 먼저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먼저 고민하는게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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