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50세까지라도 일하고 싶어요"

[기자수첩] "50세까지라도 일하고 싶어요"

심재현 기자
2012.08.02 06:50

"50세까지라도 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국내 대형증권사의 김모 부장은 1일 조간신문 1면을 장식한 새누리당의 '정년 60세 의무화 추진' 기사를 보며 기자에게 이렇게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증시 부진으로 대부분 증권사 지점이 적자를 내면서 명예퇴직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탓이다. 마흔줄 나이에도 남보다 결혼이 늦어 아들이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김 부장은 요새처럼 압박감이 컸던 적이 없다.

그는 "옆 증권사가 지점 통폐합이나 조직 슬림화를 한다는 얘기를 들어도 남의 일 같지가 않다"며 "이런 말이 돌 때마다 아랫 직원들도 술렁술렁하긴 마찬가지"라고 했다.

지난달 M증권이 서울 반포·잠실·대치 등 12개 지점의 문을 닫기로 하는 등 최근 증권가에서는 '감원 공포'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D증권이 올해 들어 지점 13곳을 줄였고 T증권은 마지막 점포인 대구지점을 폐쇄키로 했다. 또 다른 M증권은 지난해 130개였던 지점을 연초 99개로 줄인 데 이어 조만간 20개 더 축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증권사는 인위적인 인력감축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일선에서는 사실상 '떠밀린 명퇴'가 적잖다고 한다. 지방 지점의 경우 시 단위를 넘어 도 차원의 지점 통폐합이 진행되면서 물리적으로 명퇴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직원이 꽤 된다는 후문이다. 공식적인 인원 감축 외에 '자진' 형태를 띤 명퇴 압박까지 거세지고 있다는 얘기다.

증권업계에선 '별'(임원승진)을 달지 못하면 정년 55세는 고사하고 50세까지 회사에 남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부분 20대 후반에 입사해 40대 중반이면 '책상'을 뺀다. 한때 이름을 날린 애널리스트나 영업사원도 시장경력 20년을 채우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한 증권사 차장급 직원은 "요즘 술자리에서 가장 많이 하는 농담이 치킨집이나 해야겠다는 말"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2000년대 초반 IT 프로그래밍을 잘 모르면 치킨집 사장을 찾아가라는 말이 회자된 적이 있다. IT 버블이 꺼지면서 거리로 내몰린 IT 전문가들이 치킨집 개업 등으로 근근이 생계를 꾸린 상황을 풍자한 말이었다. 내년쯤 증권가에 이런 말이 돌지 않을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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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현 특파원

머니투데이 뉴욕 특파원입니다. 뉴욕에서 찾은 권력과 사람의 이야기. 월가에서 워싱턴까지, 미국의 심장을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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