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포(老鋪)는 오랫동안 손님들에게 사랑 받아온 맛집으로 통용된다. 원래는 대를 이어 운영되는 가게나 기업을 통칭하는 말이다. 기네스북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노포는 일본 오사카 건설사 곤고구미다. 서기 578년 쇼토쿠 태자 시절 백제목수들이 동원돼 왕실사찰을 지었는데, 유중광이라는 명장의 실력에 감탄한 일본 왕실에서 곤고(金剛)라는 성을 하사했다고 한다. 유중광이 일본에 정착해 세운 게 곤고구미(金剛組)인데 유중광의 40대손까지 1400년 이상 유지됐으나 부동산 투자실패로 2006년 파산했다.
일본에는 100년 이상 노포가 3만~5만곳으로 추산되는데, 상당수는 에도막부 이후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생겨난 가게다. 장인문화와 사무라이 계급방식이 결합하며 식당이 도제식으로 운영됐다. 우동집에서도 청소부터 시작해 10년간 허드렛일을 해야 밀가루에 손을 델 권한이 생겼다고 한다. 독일의 마이스터 제도도 이와 유사한데 수가 적어서 그렇지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의 한 유명 설렁탕 집에는 15년동안 깍두기용 무만 자르는 직원이 있기도 했다. 손 위 요리사들이 맡고 있는 주방에 들어가려면 무를 지나서 대파도 최소 5년은 썰어야 했다. 이런 집들은 가업을 잇는 것을 의무이자 권리, 명예로 생각하는 가족에 의해 유지된다. 자녀가 없으면 입양을 해서라도 대를 잇곤 한다.
한국에서도 노포식당을 사랑하는 매니아들이 많다. 서울시내 이문설렁탕을 비롯해 하동관, 우래옥, 한일관이 유명한데 사시사철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3대가 함께 일하는 풍경은 국물의 향신료가 되고 끈끈한 가족애와 동료의식은 반찬의 감칠맛을 더한다.
최근 서울에서 폐업하는 노포들이 많이 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경제가 어려워서지만 사실 기자도 노포에 대한 환상이 깨진 적 있다. 3년전 점심에 홀로 식사를 하던 중, 신생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먹은 음식이 더 싸고 맛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노포의 맛이 떨어진 건 사실이었다. 요식업 종사자들의 수준이 몰라보게 좋아지면서 신생식당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 됐다.
반면 노포는 아직도 과거의 맛이다. 사실 식자재나 인프라가 충분치 않았던 50~100년 전 제한적인 조리법으로 만든 음식이 지금사람 입맛을 맞추기는 쉽지 않다. 이름값만 믿고 서비스가 엉망이 된 곳도 많은 게 현실이었다. 세대를 망라하는 건 성공했지만 경쟁력은 글쎄다. 노포에 대한 환상이 깨지자 단점이 더 많이 보인다.
금융시장으로 얘기를 돌려보자. 여러 사례가 있지만 맛없는 노포 꼴이 난 게 펀드다. 예금보다 높고도 안정적 수익률이 나와야 하는데, 시장이 오를 땐 수익이 덜하고 빠질 땐 더 빠진다. 수천억원 자금을 운영하면서도 펀드매니저의 사명감이나 운영철학 교육에는 소홀한 운용사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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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전에 가까워지면 과거 가입한 펀드를 환매해 투자금을 회수하려는 소비자들이 많다보니 자산운용사들은 주가가 오르면 오히려 고민스러워하기도 한다. 펀드를 상장해 입출금을 쉽게 하자는 아이디어도 사실 환매고민의 산물이다. 펀드의 든든한 판매채널이었던 은행들은 되풀이된 손실에도 ELS(주가연계증권) 판매에 목을 메다가 사달이 났다. 펀드의 빈 자리는 ETF(상장지수펀드)가 차지하는 중이다. 국내 ETF 운용자산(AUM)은 134조7999억원(3월4일)으로 두 달 만에 10조원 넘게 증가했다.
최근 정부주도로 한국증시가 제 값을 받도록 하겠다는 밸류업 프로그램 논의가 한창이다. 큰 틀만 나왔을 뿐, 세부내용은 아직인데 효과있는 정책만 만들어지면 코스피 지수가 3000선을 훌쩍 넘을 수 있다는 기대가 많이 나오고 있다. 이번 밸류업 프로그램이 펀드에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다행이 최근 수익률이 꽤 괜찮은 펀드들이 많아졌고, 밸류트랩에 갖혀있던 가치주 운용사들에도 빛이 들어오고 있다. 이번 기회를 잘 살리기 바란다. 노포의 인기가 시들하다지만 끈기와 고집있는 맛을 찾는 손님은 항상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