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복 팔아 75% 마진…3년에 1만% 성장한 의료복 회사

수술복 팔아 75% 마진…3년에 1만% 성장한 의료복 회사

반준환 기자
2026.08.23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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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준환의 미국스몰캡(36)]의료복의 룰루레몬이라 불리는 피그스, 제2의 전성기 시작되나

[편집자주]  숫자 뒤 스토리를 읽어야 진짜 투자가 보입니다. 한국주식도 미국 스몰캡 생태계를 알면 α를 낼 수 있습니다. 기술의 언어를 투자의 언어로 풀어내는 전문기자와 글로벌 특화분석 원리서치의 투자 나침반으로 여러분을 안내하겠습니다. 반보(半步)만 앞서면 남들이 모르는 길이 보일겁니다. 난해한 기술주 투자, 이제 쉽고 재미있게 즐겨보세요.
피그스 제품사진/사진=피그스 홈페이지 캡쳐
피그스 제품사진/사진=피그스 홈페이지 캡쳐

글로벌 경제가 동반 성장하면서 각국의 의식주는 빠르게 평준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옷차림만 봐도 선진국과 신흥국 사람이 구분됐지만 이제는 그 차이가 크지 않다. 아직 격차가 남은 곳들이 있지만, 분포의 양 극단을 제외하면 소비 수준은 어디나 엇비슷해졌다.

그런데 소비는 닮아가도 사는 방식은 여전히 다르다. 한 사회가 오래 쌓아온 기반문화 때문이다. 그 차이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직장이다. 한국 직장인은 볼펜 한 자루부터 유니폼까지 회사가 주고 관리해주는 데 익숙하다. 병원 간호사복도 병원이 지급하고 세탁까지 해준다. 개인주의가 커졌다지만, 조직이 구성원을 채비시켜 내보내는 문화가 아직 몸에 배어 있다.

미국은 결이 다르다. 사무실 볼펜이야 회사가 주지만 먹고사는 데 쓰는 연장은 본인이 장만하는 나라다. 자동차 정비공은 공구함까지 제 돈으로 사 모으는 경우가 많다. 일터는 회사 것이어도 연장은 내 것, 그래서 실력도 내 것이라는 사고방식 때문이다. 미국 정비공 채용공고에는 본인 공구지참 필수(must have own tools)가 자격 요건으로 명시되곤 한다.

의료복 직접 사서 입어야 하는 미국 병원들

의료계도 예외는 아니다. 값비싼 의료장비를 개인이 사는 건 아니지만 근무복만큼은 개인이 사야 한다.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계 종사자들은 스크럽(scrubs)이라 부르는 의료복을 대부분 자기 돈으로 사 입는다. 병원은 직군별로 녹색, 와인색, 흰색 등 색깔을 정해주는 규정만 제시할 뿐이다. 병원이 스크럽을 지급하고 세탁, 소독을 해주는 곳은 멸균이 필요한 수술실 정도다. 본인의 스크럽은 집에서 직접 빨거나 돈을 주고 세탁을 맡겨야 한다.

이처럼 스크럽은 하나의 의료 소모품 카테고리로 형성된 고유의 시장인데 시기별로 큰 변화를 겪는다. 1970년대까지 미국 간호사의 상징이던 흰 원피스와 캡은 간호학교와 병원이 정한 규격에 맞춰 간호사가 유니폼 상점에서 사 입는 물건이었다. 그러다가 1980~1990년대에는 다양한 장점을 지닌 스크럽이 의료계 전반에 확산됐다.

스크럽은 대개 목이 V자로 깊게 파인 반팔 상의에 고무줄 바지 차림이다. 단추는 틈새에 균이 끼니 없앴고, 머리 위로 벗을 때 오염된 옷이 얼굴에 닿지 않도록 목을 넓힌 것이다. 빨리 입고 벗을 수 있는 편리함에 쉽게 삶아 빨 수 있다는 위생적 장점까지 더해지면서 일종의 교복이 됐다.

당시 스크럽은 병원 앞 의료용품점에서 박스째 쌓아놓고 팔았는데 사이즈는 남녀 구분이 없었고 원단은 뻣뻣했으며, 주머니가 작아 청진기를 넣기도 어려울 정도로 단점이 많았지만 수십년간 거의 개선이 없이 착용됐다. 저렴하다는 장점이 불편함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변화가 생겨난 건 2000년대였다. 체로키·디키즈 같은 워크웨어 업체들이 남녀 체형을 구분한 재단과 스판덱스 혼방을 선보였다. 의료 드라마 ER이나 그레이 아나토미 같은 작품들이 나오면서 의료인들의 스크럽 차림이 패션 아이콘으로 주목받았다. 2010년대에는 미국 의료복 브랜드 피그스(FIGS)가 등장하는 등 스크럽의 패션화, 프리미엄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했다.

피그스 창업자인 헤더 해슨은 의료와 무관한 사람이었다. 위스콘신대학교 출신으로 패션업계에서 큰 성과를 올리고 있었는데 어느날 만난 간호사 친구의 펑퍼짐한 스크럽 차림에 충격을 받아 맵시를 살리고 편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옷을 수선해줬다. 이게 입소문이 나면서 다른 간호사들의 수선 요청이 이어지자 가능성을 보고 창업을 결심했다. 해슨은 월가에서 활동하던 트리나 스피어를 소개받아 2013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피그스를 세웠다.

편하고 맵시살고 기능성에 개성까지…피그스가 일으킨 의료복 바람

피그스 제품사진/사진=피그스 홈페이지 캡쳐
피그스 제품사진/사진=피그스 홈페이지 캡쳐

초기에는 새로 만든 스크럽을 가지고 병원 응급실을 돌면서 좌판형태로 판매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병원은 의료진 수천 명이 좁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곳이라 입소문도 빨랐다.

회사의 가능성을 눈여겨 본 월가에서 거액의 투자도 유치했다. 투자자 가운데는 요가복 대표 브랜드인 룰루레몬 출신들이 만든 캠프파이어캐피털도 있었다. 이후 레전더리픽처스의 창업자 토마스 툴이 6500만달러를 넣으며 최대주주가 됐고 윌 스미스, 전 룰루레몬 CEO 크리스틴 데이도 투자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피그스는 2018년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기업에도 이름을 올렸는데 3년 성장률이 9948%였다. 팬데믹이 터진 2020년 매출은 2억6300만달러로 전년의 2.4배가 됐고 이익도 700억원(5000만달러)을 냈다. 회사는 그 해 뉴욕 병원들에 스크럽 3만 세트를 기부하고 N95 마스크 100만장 생산 계약을 맺어 내놓았다. 이듬해인 2021년 5월에는 뉴욕증시 상장에 성공했는데 공모주의 1%를 로빈후드를 통해 개인투자자, 특히 의료진에게 사전 배정해 눈길을 끌었다.

피그스 경쟁력은 의료계 종사자들의 니즈에 철저하게 부합하는 옷을 만들었다는 점에 있다. 의료인들을 위해 '피온엑스(FIONx)'라는 원단을 만들기도 했다. 실을 심초(core-spun) 구조로 뽑아 내구성을 높였고 4방향 신축, 항균·방취, 방주름, 흡습속건 기능을 넣었다. 병원에서 오염물이 튀고, 12시간 교대 근무 내내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산업용 세탁기에 수백 번 돌려지는 환경을 견디도록 만든 것이다.

디자인도 현장에서 나온다. 고객 데이터, 포커스그룹, 실제 의료진 착용 테스트를 거쳐 제품을 설계한다. 청진기·가위·스마트폰·명찰이 각각 들어가는 지퍼 주머니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말 기준 미국 디자인 특허 21건, 해외 디자인 등록 112건, 미국 상표 18건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경쟁력의 방증이다. 가격은 저가 스크럽의 2~4배에 달하지만 소재와 기능성, 맵시에 만족한 소비자들이 많다. 매출의 70% 이상이 재구매 고객에게 나온다.

피그스도 상장 직후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2021~2022년 고성장했으나 팬데믹 특수가 꺼지면서 이후 3년간 외형은 제자리에 멈췄고 수익성도 떨어졌다. 매출은 2023년 7638억원(5억4560만달러, 환율 1400원 기준), 2024년 7778억원(5억5560만달러)으로 제자리걸음했다. 순이익률은 2024년 0.5%까지 떨어졌다. 주가는 공모가 22달러에서 한때 6달러대까지 밀렸다.

그러나 지난해 반전이 시작됐다. 2025년 매출 8835억원(6억3110만달러)으로 13.6% 성장하며 다시 속도가 붙더니, 올해 2분기 매출은 2752억원(1억9660만달러)으로 전년 동기 대비 28.8% 늘었다. 세 분기 연속 25% 이상 성장이다. 2분기 순이익은 398억원(2840만달러)으로 전년 동기(99억원)의 4배가 됐다. 순이익률 14.4%, 조정 EBITDA 마진 18.6%다. 매출 대부분이 자사몰과 앱에서 나오는 D2C(소비자 직접 판매)다. 중간유통이 없으니 매출총이익률이 지난해 66.5%, 올해 상반기 71.8%에 달했다.

주력인 스크럽 매출이 27% 늘었고(매출 비중 82%), 아우터·언더스크럽·신발 같은 비 스크럽은 40% 늘었다(18%). 미국시장에서는 매출이 22% 성장했고 유럽, 중남미 등 해외매출도 67% 급증했다. 진출국은 지난해 58개국에서 올해 7월 85개국으로 늘었다. 2026년 매출 성장률 전망은 기존 14~16%에서 20%로 상향조정됐다. 조정 EBITDA 마진도 13.0~13.2%에서 14.8~15.0%로 올려잡았다. 자사주 매입 한도도 1400억원(1억달러)에서 2800억원(2억달러)으로 두 배 늘렸다. 2분기에만 336억원(2400만달러)어치를 사서 소각했다. 6월 말 현금·단기투자는 4148억원(2억9630만달러), 차입금은 없다.

급증하는 실적, 목표주가 올려잡는 월가

피그스 제품사진/사진=피그스 홈페이지 캡쳐
피그스 제품사진/사진=피그스 홈페이지 캡쳐

미국의 헬스케어·사회복지 종사자는 약 2400만명이다. 미 노동통계국은 2024~2034년 모든 산업 가운데 헬스케어가 가장 빠르게, 가장 많이 성장할 업종이라고 전망한다.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가 배경이다. 스크럽은 유행을 타지 않고, 닳으면 다시 사는 소모품이며, 병원이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최근 주목할 것은 의료기관들이 직원 복장을 통일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스크럽 시장에서 병원·의료기관이 단체 구매하는 B2B 물량은 약 15%에 그쳐 왔는데, 이 시장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을 주목한 피그스는 '팀즈(TEAMS)'라는 기관용 플랫폼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오프라인 매장도 확대하는 추세다. 현재 LA·필라델피아·뉴욕·휴스턴·시카고 5곳인 직영매장(커뮤니티 허브)을 하반기에 4곳 더 낸다.

월가는 피그스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현재 주가는 52주 최저가인 9100원(6.50달러)에서 두 배 이상 올랐지만 성장여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2분기 주당순이익 0.15달러는 컨센서스 0.07달러의 두 배가 넘는 서프라이즈였다. 다만 시장에서는 시장 점유율 상승이 단계적으로 이뤄지면서 완만한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 올해 실적에는 관세환급이라는 일회성 이익이 있고 피그스의 주요 생산기지인 요르단 협력공장 제품에 수입보류명령(WRO)이 내려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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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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