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티브 잡스가 타계한 지난 5일(한국시간 6일)은 팬택이 별러온 '베가LTE폰'을 출시하는 날이었다. 베가LTE폰은 해상도를 기준으로 국내 최고 사양의 TE폰이다. 국내 처음 '동작인식' 기능까지 선보였다. TV CF에서 반죽하던 여자가 손짓으로 전화를 받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베가LTE폰의 탄생은 이날 잡스의 타계소식에 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언론간담회 직전 기자실에 들른 박병엽 팬택 부회장은 "신제품 발표 전 스티브 잡스에 대한 애도 표시를 먼저 하라고 지시했다"며 "잡스 같은 세계적 인물이 있었기에 문화코드를 제시할 수 있었다"며 잡스를 추모했다.
하지만 박 부회장의 이날 마음은 그 어느 날보다 복잡했을 것 같다. 야심차게 준비한 신제품 출시가 잡스 타계라는 세기의 사건에 가려져서만은 아니다. 팬택은 최근 변화의 기로에 서있다. 4년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상태인 팬택이 조만간 워크아웃을 졸업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채권단이 이른바 '주인찾기'에 나선 것이다.
박 부회장은 우선매수청구권을 갖고 있다. 채권단이 보유한 구주를 우선 사들일 수 있는 권리. 일종의 거부권(Right of Refusal)이기도 하다. 우선협상대상자가 제시한 금액에 주식을 팔지 않고 먼저 살 수 있다. 물론 돈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4500억원에 달하던 박 부회장의 지분은 휴지조각이 됐고 남은 사재는 이미 회사 정상화를 위해 다 털었넣은 지 오래다. 박 부회장이 의미있는 지분을 갖기 위해선 최소 1000억원 정도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가진 게 없다.
지난 7일 마무리된 유상증자 참여와 인수의향서 접수에는 사모펀드 및 국내외 투자자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 주인이 박 부회장에게 다시 팬택을 맡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박 부회장 역시 마찬가지다. 약속을 지켰으니 이제 그 짐을 내려놓을 수도 있다. 물론 매각이 성사되지 않아 독자 생존의 길을 갈 수도 있다.
어떤 형태가 팬택에게 가장 좋은 조건일지 알 수 없다. 고려 사항은 있다. 팬택이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하고, 회사가 정상화된다고 해서 한시름 덜고 여유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애플 삼성 구글 MS' 등 굴지의 IT기업이 벌이고 있는 각종 특허 및 로열티 소송과 합종연횡의 여진은 곧 팬택에게 닥칠 일이다. 어쩌면 어렵게 극복한 지난 4년이 스마트 생태계에서 다시 흔들릴 수도 있다. 누가 됐든 팬택의 새 주인은 이런 객관적 현실을 타계해 나가기 위한 투자의지가 필요하다. 정상화된 팬택을 이끌 경영진 역시 마찬가지다.
박 부회장은 최근 사석에서 "(경영자로서) 내 잘못이었지만, 결자해지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러니한 현실도 기막혔다"고 말했다. 오너자격을 박탈당했음에도 전문경영인으로 '백의종군'하겠다던 결정을 채권단이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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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기업이 정상화된다는 기쁜 소식 앞에서 4년전의 결정을 다시 떠올리는 박 부회장의 찹찹함이 읽히는 말이다.
박 부회장은 "성공하고 100점 받는 사람만 잘해주지 말고 항상 틀리고, 먹고 살기 힘들지만 지치지 않고 노력하는 이, 피와 땀이 나오는 이도 인정해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창업한 회사서 쫓겨났다 다시 복귀, 위대한 혁신가로 추앙받으며 인생을 마감한 잡스의 철학은 '갈망을 멈추지 않는 것(Stay foolish)'이었다. 박 부회장의 갈망이 잡스의 그것보다 못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더욱이 팬택의 회생 과정에서 보여준 '박병엽식 리더십'은 허약체질로 통하는 국내 IT산업에서 실패를 극복한 벤처 CEO의 또 하나의 성공사례이자 잡스가 말한 '멈추지 않는 갈망'의 결과물 아닐까.
팬택의 새주인 찾기가 어떤 결과이든, 박 부회장의 갈망, 나아가 팬택 직원들의 갈망이 중단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