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시장의 원리와 힘의 원리

[CEO칼럼]시장의 원리와 힘의 원리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대표이사
2012.01.06 05:00

나는 스스로 시장주의자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시장의 원리가 모든 걸 해결해 줄 거라고 믿는 시장 만능주의자는 아니다.

20년간 한국에서 제조업을 해 오면서 느낀 바가 있다. 한국에서 대기업을 고객으로 중소 벤처기업이 성장을 지속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창업자들을 위한 강연대에 설 때마다 이 점을 강조하고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겨냥해보라고 충고한다. 출발은 국내에서 하더라도 국내 시장은 연습 게임 정도로 생각하고 해외 시장에서 승부를 걸라고 말한다. 현재 성공한 대부분의 B2B 벤처 제조업체들은 해외 시장에서 성공했다. 다산처럼 국내 시장에서부터 성장을 시작한 기업조차도 해외 매출이 일정 비율 이상을 넘어설 때까지는 진정한 영업 이익을 달성하기가 힘들었다.

이런 화두를 꺼낸 것은 몇몇 대기업을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다. 대기업인들 성장을 지속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오늘날 대기업들이 무한경쟁의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고 성장을 지속하는 일은 중소 벤처기업들의 생존문제보다 더 어려운 숙제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현재 이런 우리 시장의 모습도 우리 모두의 얼굴이고 책임이고 현실이다.

얘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시장의 현상 중에 어디까지가 시장의 원리이고 어디부터가 힘의 논리일까를 같이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시장 만능주의자 입장에서는 어쩌면 힘의 논리조차도 시장의 원리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에 선다고 하더라도 미국 자본주의 시장의 역사에서 보았듯이 힘의 논리에 기반한 독점과 덤핑만은 시장에서 추방해야 할 악덕이라고 전제하고 우리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 공정거래위원회가 어떤 역할을 하는 정부 기구인지 잘 이해가 안 갔었는데 엊그제 신문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보도를 봤다. 마트에 입점해 제품을 판매하는 중소기업의 판매 수수료율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기사였는데 공정위에서 속 시원한 표현을 했다. 업체마다 수수료율이 천차만별인데 유독 약한 처지의 중소기업에서 떼는 수수료율이 너무 과중한 현상에 대한 표현이었다.

마트의 수수료율은 시장의 원리가 아닌 힘의 논리가 작동한다. 특정 마트에서 부과하는 과중한 수수료율이 싫어서 다른 마트에 가서 제품을 판매할 선택권이 없다면 그것은 시장의 원리라기보다는 힘의 논리가 작동을 하는 영역이다.

비슷한 사례로 자영업자들에게서 차별적으로 높게 부과하는 신용카드 수수료율도 들 수 있다. 선택의 여지없이 무조건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율이 시장의 원리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거래 상대방이 싫으면 선택하지 않을 시장의 자유가 주어질 때 비로소 시장의 원리가 작동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독과점적인 위치에 있는 은행의 입장에서는 해당 분야의 신용도와 손실률에 근거해 원가를 산정하고 그렇기 때문에 취약한 자영업 분야일수록 수수료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마치 시장의 원리인 것처럼 포장하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독과점자의 힘의 논리일 뿐이다.

어떤 제조업체가 자기 마음대로 각 제품의 이익률을 책정할 수 있는가. 삼성전자조차도 각 제품별 이익률은 들쑥날쑥 제멋대로다. 제조 원가에 상관없이 시장에서 팔리는 가격이 시장 경쟁 상황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각 제품의 이익률을 총합해서 그 회사의 시장에서의 평균 이익률이 시장의 실력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이런 것이 시장의 원리이지 자기 멋대로의 계산으로 가격을 책정할 수 있는 것을 시장의 원리라고 부를 수 없다.

만일 자영업자가 수수료율이 낮은 직불 결제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도 불편함이 없이 결제가 가능하다면, 어느 누가 높은 수수료를 떼고 신용카드 결제를 택하겠는가. 요즘처럼 인터넷과 휴대폰이 광범위하게 응용되는 기술 환경에서는 정부 규제에 가로막히지만 않는다면 다양한 결제 방식이 가능하다. 신용도가 낮다고 높은 대출 이자율을 차별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경제적 약자들의 상황도 같은 맥락에서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일방적인 거래 관행, 대기업 집단의 만연한 내부거래 등등 시장의 원리보다는 힘의 논리에 가까운 것 같은 지금까지의 시장의 관행들에 대해서도 다시 곰곰이 되짚어 볼 필요가 있는 시점에 서 있다. 진정한 시장의 원리가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과 합리적인 접근이 있어야 일그러진 얼굴의 자본주의가 새로운 합리적인 자본주의 4.0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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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렬 사회부장

머니투데이에서 사회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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