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태의 詩가 있는 밥상]집,꽃보다 환한 저 불빛

[오인태의 詩가 있는 밥상]집,꽃보다 환한 저 불빛

오인태 시인
2013.08.16 07:30

<39>쏙된장국과 애호박달전, '집'

[편집자주] "그래도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버리지 말게 해 달라(오인태 시인의 페이스북 담벼락 글 재인용)'. 얼굴 모르는 친구들에게 매일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이있다. 그는 교사이고 아동문학가이고 시인이다. 그는 본인이 먹는 밥상의 사진과 시, 그리고 그에 대한 단상을 페이스북에 올려 공유하고 있다. 시와 밥상. 얼핏 보면 이들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 수 있지만 오인태 시인에겐 크게 다르지 않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더불어 삶을 산다는 것. 시 역시 때론 각박하고 따뜻한 우리 삶 우리 이야기다. 시와 함께 하는 '밥상 인문학'이 가능한 이유다. 머니투데이 독자들께도 주 3회 오인태 시인이 차린 밥상을 드린다. 밥상을 마주하고 시를 읽으면서 정치와 경제를 들여다보자. 모두 사람 사는 이야기니 어려울 게 없다.

집이 있습니까? 일마치고 돌아가면 몸과 마음 내려놓고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있습니까? 고단하지만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꽃이라도 한 다발 사서 들어가고 싶은, 그런 집이 있습니까? 먼저 들어와서 더 늦게 귀가하는 이를 위해 꽃보다 환한 등불을 켜놓고 몇 번이고 국을 덥히는 사람이 있는, 그런 집이 있습니까?

때가 되면 모여든다고 ‘집集’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요. 그렇다면 결혼하고 애들 낳고 명색이 일가를 이루고서 온 식구들이 저녁밥상에 둘러앉은 적이 있었던가? 아,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그런 저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대선 때 한 예비후보가 내건 “저녁이 있는 삶”이 오히려 매우 현실적인 구호로 다가온 것도 이런 까닭에서였겠지요.

저녁이 없어졌다는 말은 가족의 일상이 사라졌다는 뜻이고, 가족의 일상이 사라졌다는 말은 곧 가족공동체가 무너졌다는 의미일 텐데요. 내가 이렇듯 혼자 먹는 ‘저녁밥상’을 극진히 차리는 것도 저녁이 되면 두레밥상에 둘러앉아 한 식구임을 확인하던, 그런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는 일인 걸요.

두레판 가운데는 된장국 뚝배기가 우물처럼 놓여 있고, 그 위로 애호박 같은 달이라도 하나 돋았으면 하는 저녁, 쏙이 “쏙쏙” 나오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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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선 에디터

증권,굴뚝산업,유통(생활경제), IT모바일 취재를 거쳐 지금은 온라인,모바일 이슈를 취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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