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호 한국연구재단 나노융합단장
해방 직후인 1948년, 우리나라 수출액은 2200만 달러로 같은 해 아프리카 카메룬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후 정부의 기간산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1964년 11월 30일 수출실적 1억 달러를 돌파했다. 바로 이날이 '수출의 날'(현재 무역의 날)이다.

그로부터 반세기 만인 올해 연간 수출액은 약 2만5000배 증가된 5500억 달러, 그리고 경상수지 흑자는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앞지른 630억 달러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비약적인 경제발전의 근간에는 1968년 2월부터 1970년 7월까지 당시 국가예산의 23.6%를 투입해 건설한 '한국 경제의 대동맥' 즉, 경부고속도로라는 사회 인프라가 있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도 마찬가지다. 본래 서로 다른 영역이던 과학과 기술은 산업혁명 이후 19세기 후반부터 결합해 발전했는데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연구와 개발의 개념이 형성됐다.
이 시기를 전후해 주요 선진국에서 국가차원으로 연구개발 활동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최초의 국가연구소, 즉 국가차원의 연구개발 인프라인 원자력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를 1959년에 개소했다. 이후 많은 연구기관들이 설립됐고, 이를 기반으로 우리나라가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중점 추진하고 있는 선도형 과학기술은 곧 창조적 연구개발을 의미한다. 이를 촉진하기 위해선 선진 과학기술 인프라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힉스입자 발견 사례와 같이, 최첨단 연구장비확보 여부가 과학기술 발전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요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과학기술 선진국들은 이미 첨단 연구개발의 주요 인프라인 연구시설 및 장비에 대해 국가차원에서 지원·관리하고 있다.
그럼 우리나라 과학기술 인프라는 창조적 연구개발을 위한 토대 역할을 하기에 충분할까? 지금까지 정부는 매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의 약 8%를 연구시설·장비 구축에 투자해 왔으며, 이러한 과학기술 인프라 구축은 기초적인 연구환경의 개선에 큰 역할을 해왔다. 구체적으로 보면, 최근 9년간 국가과학기술지식정보서비스(NTIS)에 등록·관리되고 있는 연구시설·장비는 약 5만3500여 점, 금액으로는 6조8800억 원 규모에 이른다.
그러나 구축된 연구시설·장비의 체계적 관리나 운영은 상대적으로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 예를 들어 연구과제가 종료되거나 연구자가 이직하는 경우, 구축된 시설과 장비가 방치되는 경우도 있었으며, 공동활용하려는 노력이 없이 동일 기관 내 또는 인접 기관에 유사한 연구시설·장비의 중복·과잉 구매된 사례들이 지적받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NTIS 장비 중 실제로 공동활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장비는 8000여점으로 전체의 11%에 불과할 정도로 대부분의 연구장비가 개인 연구자에게만 관리가 맡겨져 있다.
독자들의 PICK!
창조형 연구개발 단계에 들어선 우리나라는 이제 더욱 더 최첨단 과학기술 인프라 구축이 필요한 상황이다. 어려운 국가 재정여건을 고려한다면, 국가 연구개발 인프라 확충에 대한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하다.
과학기술계에서는 시설과 장비에 대한 공동활용을 촉진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해 예산을 절감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정부는 절감된 재원으로 첨단장비의 구축뿐만 아니라 전문운영요원의 인건비와 시설 및 장비의 유지보수비용을 지원해야 한다. 연구자들이 필요한 최고성능의 연구기자재를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유휴·저활용장비는 빠르게 다른 수요처를 찾아 이전설치해 새로운 생명을 찾아 주어야 한다.
때마침 미래창조과학부에서는 국가연구시설 및 장비에 대해 현장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이용효율화 대책을 마련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기 구축된 연구 인프라를 정확히 파악하고, 향후 선진화된 연구 인프라 구축·활용 지원정책을 펼칠 예정이라고 하니 연구자로서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그동안 구축 위주로 추진되었던 정책이 관리 및 활용 강화 위주로 바뀌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정부는 새로운 정책을 시행하더라도 과학기술인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위축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과학기술인에게 효율적인 인프라 지원을 통하여 연구현장을 개선해주고, 연구자들은 보다 혁신적인 기술, 제품과 서비스 창출해 나간다면,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는 창조경제 실현에 큰 도약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