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년 전 서울 신사동 K옥션 메이저 경매에 출품된 희귀 물품이 화제가 됐다. 다름 아닌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국장이 새겨진 회중 시계. 구한말 당시 왕실과 고위 관리들 사이에서 회중 시계가 유행했다고 한다. 회중 시계는 손목시계가 나오기 전 양복 포켓에 넣을 수 있는 휴대용 시계를 말한다. 특히 그 시기 순종의 시계 사랑은 유별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거처였던 창덕궁엔 전용 시계방이 있을 정도다.
그렇게 국내에 휴대용 시계 역사가 시작된 지 어언 100년이 흘렀다. 한 때 손목 시계가 요즘의 휴대폰 만큼 크게 대중화됐던 시기도 있다. 1980~1990년대다. 기자가 중고학교 다닐 때만 해도 디지털 손목시계는 거의 모든 학생들의 필수품이었다. 특히 야광시계나 방수시계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인기 아이템이었다. 두 시간에 한 대 꼴로 다니던 버스 시간을 제 때 맞춰야 했던 시골 동네도 마찬가지다.
기자의 손목에서 시계가 사라진 건 휴대폰이 나오면서부터다. 휴대폰에서 정확한 시간 정보를 알려주면서 거추장스러운 소지품으로 전락했다. 이후 손목 시계는 시간 정보를 보기 위한 용도보다는 결혼식 예물 혹은 `간지 나는' 패션 아이템쯤으로 인식되고 있다.
손목 시계가 요즘 또다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스마트폰과 연동돼 시간 정보는 물론 휴대폰 통화나 메시지, 이메일, 사진 등을 주고받을 수 있는 스마트 워치 때문이다. 삼성전자, LG전자, 소니 등 스마트폰 제조사는 물론 구글·애플까지 전세계 IT 공룡기업들이 죄다 손목 위 스마트 전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세인들이 당장 스마트 워치에 기꺼이 돈지갑을 열 수 있을 지는 회의적이다. 단순히 시계로 통화하고 메시지를 확인하거나 사진을 촬영하는 용도라면 말이다. 단순히 옷 주머니나 핸드백 속의 스마트폰을 빼는 게 불편해 거추장스러운 시계를 차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작년까지 출시된 1세대 스마트워치들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손목 시계의 소비문화가 과거와 크게 달라졌는데도 휴대용 정보기기 이상의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들어 양상은 달라지고 있다. 제조사들이 명품 시계제조사나 패션 디자인 회사들과 적극적으로 손을 잡거나 디자인을 크게 개선한 후속제품을 내놓고 있다. 스마트 워치가 시장에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현재 유행하는 손목시계에 버금가는 감성적 디자인과 스마트폰 확장기기 이상의 킬러 서비스들이 있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인데, 실제 그런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스마트 워치를 단순히 패션 아이템 혹은 스마트폰 액세서리 기기의 연장선으로 본다면 얼리 어답터들만을 위한 틈새 시장용 제품으로 그칠 수 밖에 없다. 기존과 전혀 다른 새로운 소비 문화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가. 손목 위 전쟁터의 최종 승자를 꿈꾼다면 당연히 고민하고 있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