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랜디 셰크먼·데이비드 베이커 교수
1980년대 사제 관계 인연…10년 차 두고 노벨생리의학·화학상 수상
"기초과학 위한 기부 문화, 한국서도 활성화되길"

"자산가들의 아낌없는 지원 덕분에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기초과학을 위한 기부 문화가 활성화되길 바랍니다." (2013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랜디 셰크먼·2024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데이비드 베이커)
역대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은 한국의 기초과학 발전을 위해 이처럼 제언했다. 랜디 셰크먼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교수(2013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와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2024년 노벨화학상 수상자)다. 오랜 사제 관계인 이들은 6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열린 '2026 IBS(기초과학연구원) 콘퍼런스'의 연사로 함께 무대에 올랐다.
셰크먼 교수와 베이커 교수는 모두 '단백질'을 연구한다. 단백질은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 영양소로, 뼈와 근육을 성장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항체를 형성해 외부 바이러스와 맞서 싸운다. 몸속 세포가 음식을 소화하고 에너지를 생성하는 것은 단백질의 일종인 효소가 돕기 때문이다.
셰크먼 교수는 세포 안에서 단백질이 이동하는 '운송 시스템'의 원리를 규명해 2013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베이커 교수는 1980년대 후반 셰크먼 교수의 연구실에서 박사 생활을 했다. 11년 뒤인 2024년, 그는 AI를 활용해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단백질을 설계하는 기법을 최초로 고안해 노벨화학상 수상자가 됐다.

셰크먼 교수는 "베이커는 창의적인 사람이었고 굉장히 엉뚱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베이커는 들어오자마자 연구실이 원래 문제에 접근하던 방식과 완전히 다른 방식을 주장했는데, 결국 2주 만에 마법처럼 (연구에) 성공했다"며 "이후로는 (베이커가) 알아서 연구할 수 있도록 그냥 뒀다"고 했다.
베이커 교수는 스승인 셰크먼 교수에 대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스승이었다"며 "그룹 내에 일방적으로 목소리가 큰 연구자들도 많았는데, 소수에 의해 연구실의 전체 의견이 좌우되지 않도록 중재하는 데 탁월했다"고 했다.
이들은 한국인 연구자와 더불어 연구한 경험도 많다. 베이커 교수는 "한국 출신 박사들은 매우 창의적"이라며 "로제타폴드 연구를 함께한 백민경 박사(현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대표적인데, 수많은 연구자 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실험을 수행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그는 "10명이 넘는 한국 연구자와 일했는데 처음엔 (의견 개진에) 쑥스러워하는 경향도 있었지만 대부분 소통에 매우 탁월했다"고 했다.
셰크먼 교수도 "한국인 박사들에게 두드러진 특징이 있었는데 실험 진행에 정말 철저하고 데이터도 늘 깔끔하게 정리했다는 것"이라며 "실험할 때의 집중도나 정밀도 면에서 정말 탁월했다"고 했다. 그는 "데이비드(베이커)처럼 중요한 메모지를 아무 데나 놓고 잃어버리는 일도 없었다"면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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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을 대표하는 인류 최고의 영예인 노벨상을 받은 이들이 입을 모아 강조한 것은 '기부'다. 베이커 교수는 "그간 미지의 영역에 계속해서 도전했는데, 연구 초반은 물론 지금까지 가장 큰 도움이 됐던 게 수많은 기업과 자산가가 베풀어준 기초과학에 대한 기부금"이라고 했다.
셰크먼 교수는 "미국에는 기업이 대학이나 여러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연구 프로그램을 특정해 기부하는 문화가 있다"며 "말하자면 억만장자가 과학자에게 백지수표를 쥐여주며 필요한 연구를 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에도 삼성, 현대 같은 세계적인 기업과 부유한 자본가가 있지만 기초과학에 대한 기부는 아직 활성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산업 부흥을 위한 차원에서 기초과학을 지원하는 문화가 한국에 정착되길 바란다"고 했다.
천진우 IBS 나노의학연구단장은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처럼 우리나라에도 신진연구자를 기업 차원에서 지원하는 문화가 시작됐지만, 아직 미래에 필요한 연구 인력을 양성할 만큼의 수준은 아니다"라며 "기초과학을 위한 기부 문화가 활성화된다면 과학 인재를 키워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