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급내시경 후 환자가 사망한 사례에 대한 의료사고 소송 2심에서 금고형을 선고받아 면허취소 위기에 놓인 의사에 대해 탄원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동료 의사들이 "해당 의사에 대한 유죄 판결은 필수의료 죽이기로 이어질 것"이라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의료사고에 대한 의사 책임을 피할 수 있는 진료과로의 지원율이 급증하는 풍선효과로도 이어지면서 필수의료 기피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단 지적이다.
11일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에 따르면 이 학회는 경기 광주에서 내과를 운영하는 정모 원장에 대한 탄원서 링크를 전날(10일) 의사들에게 배포해 서명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다. 이에 앞서 정씨는 자신이 쓴 탄원 호소문에서 "면식이 없는 여러 선생님께 이렇게 도움을 요청하는 이유는 설명주의 의무 위반 과실치사 소송 1·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현재 대법원까지 법정 소송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라며 운을 뗐다.
정씨에 따르면 그는 2020년 5월 자신이 운영하는 내과의원에서 비만치료를 위한 '위 내 풍선'을 시술한 환자를 추적 관찰하던 중, 야간에 환자에게서 '위내풍선을 제거해줄 것'을 요청받았다. 환자는 앞서 시술받은 위풍선으로 인해 위에 구멍(천공) 날 정도의 극심한 통증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응급내시경을 준비하며 전화통화로 환자의 금식 여부를 물었고, 금식했다는 내용을 구두로 확인했다. 하지만 정작 내시경을 넣어 관찰했을 때는 금식이 돼 있지 않아 음식물이 위 안에 남아있었다.
이에 정씨는 내시경 시술을 바로 멈췄지만 이후 환자가 구토했고, 기도를 통해 폐로 음식물이 들어가는 '흡인'이 발생해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했다. 이후 환자는 상급병원으로 이송됐지만, 환자는 흡인성 폐렴과 위천공을 겪고 결국 사망했다. 정씨는 "금식 여부를 엑스레이·CT(컴퓨터단층촬영) 등으로 더 확인하지 않고 구두로만 확인해 사고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논리, 그런 과실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문제 삼아 재판부는 의료과실치사 금고 1년(집행유예 없이 실형)을 선고했다"고 말했다.

현재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정씨는 "그간 전문가 자문, 논리를 뒷받침할만한 자료를 수년간 계속 제출했지만 법정에서는 기각·인용되지 않았고,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판결만 남았다"며 "요즘 진행되는 의료소송의 방향은 의사에게 억울한 부분이 너무나 많다"고 토로했다.
정씨가 속한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는 대법관에게 보내는 탄원서에서 "정씨의 딱한 사정을 접하고 탄원서 작성에 동참하게 됐다"며 "응급 내시경은 환자의 출혈이 심하거나 통증이 심한 경우 금식과 관계없이 내시경 검사가 필요한 경우가 있으며 금식 여부는 통상적인 내시경 검사와 달리 요구되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미국소화기내시경학회(ASGE)와 국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응급 상황에서 환자의 금식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충분한 금식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문제 해결을 위해 수술·시술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한다. 학회는 "흡인성 폐렴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보다는 위풍선으로 인한 천공이 사망의 주원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내시경 검사 전 금식하지 않은 게 사망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소견을 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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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의사들은 의사 단체대화방에서 "이번 사건은 의사에게 호의적이지 못한 최근 판례들에 이어 법조계가 과도한 배상과 책임 의무를 요구한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탄원서에 서명했다고 밝힌 의대 교수 A씨는 기자에게 "법조인들이 내시경 검사할 때마다 금식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CT(컴퓨터단층촬영)를 찍어야겠다"며 자조 섞인 비판을 내놨다.

최용재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 회장은 1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왕이 죽으면 어의까지 땅에 묻어 죽이던 조선시대처럼 환자가 죽으면 의사까지 죽이는 형국"이라고 빗댔다. 이어 "파렴치한 저수가, 야만적인 사법 리스크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는 의사 수 정원부터 늘렸고 의료사고는 (막대한 배상금을 받을 수 있는) '로또 의료'가 되고 말았다"며 "한국에서 필수의료 의사는 감옥 가면서 의사면허가 없어지는 위험까지 감수해야만 생명을 구하는 일에 몰입할 수 있다"고 성토했다.
이런 의료사고 후 의사에 대한 배상 책임을 지게 하는 건 수술하지 않는 진료과로의 전공의 지원자가 늘어나는 풍선효과로 이어졌다는 게 의사들의 분석이다. 환자를 직접 진료·수술하지 않는 예방의학과의 전공의 지원율은 의료대란 전인 지난해 초 16.7%에 머물며 최하위권에 속했지만 의료대란 후인 올해 2월, 93.3%로 전공의 지원율 1위 과목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에 정부는 연내 의료분쟁 조정 제도를 고치고 보완하겠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학적·법적 도움이 필요한 환자를 위해 '환자 대변인(가칭)'을 올해부터 시범 운영한다"며 "의료사고 발생 시 보험회사를 통해 빠르고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의료사고 책임보험·공제 가입을 활성화하고 필수진료과 전공의·전문의에게는 보험료 일부를 국가가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의료분쟁 조정의 감정·조정 결과를 수사기관과 공유해 불필요한 대면 소환조사를 최소화하는 등 수사 절차도 개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