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이비엘바이오의 역전 홈런

[광화문]에이비엘바이오의 역전 홈런

김명룡 바이오부장
2025.04.10 05:33

2015년 한화케미칼은 사업 재편 차원에서 바이오사업부를 매각했다. 2006년부터 항체기반의 바이오신약을 개발해 왔지만 성과가 나지 않는다고 판단, 사업을 접은 것이다. 대기업 한화가 바이오사업을 신수종사업으로 삼았다는 기대감으로 이곳으로 몰려들었던 수많은 인재들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빠졌다.

국내 바이오기업에서 일하다 한화케미칼의 바이오사업부 총괄로 입사했던 이상훈 대표(현 에이비엘바이오(159,800원 ▼20,200 -11.22%) 대표)도 그 중 한명이었다. 그는 서울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하버드대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한 인재다. 미국에서 다국적제약사, 바이오회사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국내로 들어와 바이오벤처 파멥신을 공동 창업했다.

이 대표는 2014년 한화케미칼로 스카우트됐다. 대기업에서 제대로 된 신약을 개발하고 싶어 회사를 옮겼지만, 사업을 정리하는 일을 억지로 맡게 됐다. 벼랑 끝에선 심정으로 2016년 차린 것이 에이비엘바이오다. 반강제적으로 대기업에서 스핀오프(분사)하는 형태였다. 이중항체 분야의 독자적인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회사는 그렇게 설립됐다.

이상훈 대표는 "연구원들에게 기술력이 있으니 함께 세계에서 통하는 바이오 기업 한번 만들어보자"고 설득했다. 14명의 박사급 연구원들이 그를 따랐다. 회사의 CFO(최고재무책임자)를 맡고 있는 이재천 부사장은 "바이오사업을 키우려고 왔다가 사업을 청산하는 일을 하게 됐었다"며 "허탈함에 빠졌을 무렵 우리 스스로 바이오사업을 해보자는 이상훈 대표의 제안을 받고 회사에 합류했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정리한 바이오사업을 다시 시작했을 때 세상의 시선이 호의적이었을 리 없다. 하지만 오직 실력 하나로 이를 뚫어냈다. 설립 1년만에 수백억원의 자금을 유치했는데, 주요 바이오벤처캐피탈이 투자를 했다. 이를 종잣돈으로 연구개발을 진행했고 기술수출(라이선스 아웃)도 연달아 성공하며 회사를 키웠다. 에이비엘바이오는 그동안 국내 유한양행과 미국 컴퍼스 테라퓨틱스, 중국 시스톤 파마슈티컬스, 사노피 등에 신약후보물질을 기술수출 했다.

그렇게 성장을 이어오던 에이비엘바이오가 최근 기술수출로 잭폿을 터트렸다. 이 회사는 지난 7일 글로벌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4조원 규모의 그랩바디-B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만 최대 1480억원(7710만파운드)이다. 개발 단계별 기술료(마일스톤)과 순매출에 따른 로열티는 최대 4조원에 이른다.

규모 뿐 아니라 계약의 질도 훌륭하단 평가다. 과거에 글로벌제약사들과 국내 바이오기업과 기술수출을 진행한 사례를 거의 없었다. 콧대 높은 이들의 국내 바이오기업과 계약을 맺었다는 건 그만큼 신약후보물질의 가치가 높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에이비엘바이오가 기술을 이전해주면 GSK는 전임상, 임상 개발, 제조, 상업화를 담당한다. 국내 바이오기업이 글로벌제약사와 동등한 위치에서 계약을 맺었다는 점의 의미가 크단 평가도 나온다. 넓게 보면 한국 바이오산업의 위상을 한단계 끌어 올린 것으로 평가된다.

에이비엘바이오가 지금의 성과를 내는 데 9년이 걸렸다. 한순간에 대기업의 울타리에서 밀려 나왔던 이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좌절을 겪었고, 이를 극복해 내기 위해 노력했을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그들에겐 불확실성과 불안을 극복할 더 큰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에이비엘바이오의 신약후보물질이 신약으로 인정받기까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적어도 지금은 실패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신약개발이란 불확실성을 헤쳐 나가고 있는 이회사 직원들에게 따뜻한 축하의 박수를 보냈으면 한다. 이런 격려가 이들에게 또 다른 위기가 닥쳤을 때 이를 이겨내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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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룡 증권부장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卽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卽殆). 바이오산업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미래 먹거리입니다. 바이오산업에 대한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각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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