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해 연안의 작은 나라 그루지야에서 지난 13일 밤 믿기 어려운 소동이 벌어졌다. 친정부 성향의 '이메디TV'에서 러시아군이 그루지야 수도 트빌리시로 진군하고 있다는 속보가 흘러나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의 모습이 등장했고 피난을 떠나는 그루지야 국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2008년 러시아와 5일간 벌인 전쟁에서 공포에 떨었던 그루지야 국민들은 혼비백산했다. 급기야 사카슈빌리 대통령이 암살됐다는 급보가 나오자 공포감이 고조됐다.
알고보니 이 뉴스는 러시아가 또 그루지야를 공격할 경우를 가상한 시뮬레이션 보도였다. 뉴스의 시작과 끝에 이 사실을 알렸지만 형식적이었다. 국내외에서 방송사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
그루지야 야당은 이번 보도에 정부가 개입했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사카슈빌리 대통령이 러시아와 긴장을 고조시켜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고, 이메디TV가 총대를 멨다는 것이다. 정부 인사가 방송국 간부와 이런 내용으로 대화를 나눴다는 소문도 들렸다.

언뜻 말도 안되는 상황으로 보이지만 개연성은 충분하다. 소련 시절부터 모스크바의 권위에 굴복하길 거부했던 자존심 센 이 나라는 소련 해체 후 독립국가연합(CIS)에도 가입하지 않고 친미 노선을 걸었다. 2008년 8월, 그루지야는 이웃한 친러 성향 자치공화국 남(南)오세티야를 선제공격했으나 러시아의 보복을 받고 큰 피해를 봤다.
최근 그루지야 주변 정세가 급변했다. 친미 노선을 함께 걷던 이웃나라 우크라이나에서 친러 정권이 들어섰다. 그루지야 정부는 고립위기에 빠졌고 마침 누군가 '충격요법'으로 가상전쟁 보도를 추진했다는 게 음모론 골자다.
물론 러시아가 당장 그루지야를 침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무엇보다 2014년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소치가 그루지야와 지척이기 때문에 말썽을 일으켜서 좋을 게 없다.
황당한 소동이지만 남 일 같지 않다. 음모론이 사실이든 아니든 가짜 뉴스가 나온 배경은 불안한 안보상황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난지 올해 60년이 지났지만 한반도에선 여전히 주변 강국의 이해가 충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