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론'에서 '상콩'으로..세계 경제질서 중심 이동
# 2008년 9월. 선진국이라는 애인과 커플링을 끼고 있던 신흥국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애인의 병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선진국이 기침만 해도 신흥국은 열이 나던 시절이었다. 경기둔화에 걱정이 많던 중국도, '9월 위기설'로 몸살을 앓던 한국도 부실한 애인 미국의 앞날만 쳐다봤다. 결국 9월15일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전세계를 집어삼킨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됐다.
# 2010년 9월. 한국,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중심의 신흥국들은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경제성장으로 글로벌 경기회복을 주도한다. 반면 선진국은 아직도 더블딥 논란을 일으키는 '한 겨울'이다. 디커플링이다.
◇아시아, 글로벌 경제를 이끌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리먼 2주년 특집 기사에서 아시아가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났다고 선언했다. 아시아 기업들의 주요 시장인 미국과 유럽 경제가 여전히 지지부진, 수요가 불안하지만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계 경제의 중심이 구미에서 아시아로 움직이는 현실을 더욱 명확히 했다고 강조했다.
그사이 세계 금융의 축도 이전의 ‘나일론(Ny-Lon, 뉴욕+ 런던)’에서 ‘상콩(Shang-Kong, 상하이+홍콩)’으로 이동하고 있다. 아시아 경제는 이제 과열 논란마저 빚는다. 지난해만 해도 출구전략의 국제적 공조는 탄탄했지만 이젠 신흥국들이 더이상 선진국들을 기다려 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한국과 인도, 호주, 태국, 브라질 등은 이미 금리를 올리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중국도 금리를 인상할 시기가 다가왔다는 징후들이 농후해진다. 지난 11일 발표된 중국의 8월 산업생산은 전년대비 13.9% 증가해 중국 경제 성장의 둔화 가능성 논란을 한방 날려 버렸다.
서둘러 출구를 찾아 나서야 할 정도로 뜨거워진 신흥국 경제가 세계 경제를 거두어 먹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는 오히려 선진국들이 먼저 제기한다. 조나단 가너 모간스탠리 투자전략가는 "아시아 등 이머징 마켓은 '멀티한 경기회복'을 이끌고 있다"며 "P&G 같은 선진국 기업은 앞으로 5년 이상은 이머징 마켓 덕분에 먹고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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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대약진= 신흥국 경제의 도약은 중국의 대약진으로 대표된다. 중국은 2분기 국내총생산(GDP)이 1조3369억 달러를 기록해 1조2883억 달러의 일본을 제치고 명실상부한 세계 2위 경제대국, 즉 G2에 공식 진입했다. 선진국에 비해 현저한 경제 성장 속도의 차이를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실물 부문에서도 성과가 뚜렷하다.
특히 한 나라의 경제력을 드러내는 산업인 자동차 산업에서 최근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자동차 소비시장으로 떠오르는 동시에 수출 규모에서는 독일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상반기 중국의 자동차 수출은 25만대를 기록, 전년대비 무려 55.93% 급증했으며 지난 7월 자동차 판매는 15.4% 늘어난 82만2300대를 기록했다. 반면 미국은 지난달 자동차 판매량이 21% 급감한 99만6532대에 그쳐 8월 판매량으로는 28년만에 최소를 기록했다.
아시아 경제 전문가인 유위 파파트 투자전략가는 13일 마켓워치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경제가 최근 성공적으로 연착륙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내수 성장세가 다시 속도를 내는 것 역시 글로벌 경제와 증시에 좋은 소식이라고 말했다.
신흥국들은 외형적 성장 못지않게 내실도 탄탄해졌다. 미 컨설팅업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지난 7일 발표한 세계 가치창조 기업 순위에서는 신흥국 기업들이 기존 선진국 기업들을 밀치고 상위권을 석권했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의 총주주수익률(TSR)을 기준으로 글로벌 기업들의 가치창조 순위를 매긴 결과 10위 안에 중국 기업이 5개 포함되고 한국, 인도, 홍콩, 인도네시아 등이 이름을 올렸다.
BCG는 "금융위기 이후 신흥국들은 빠르게 위기 전 성장 속도를 회복했지만 선진국들은 장기간 저성장을 지속하고 있다"며 "세계경제가 '이중 속도(two-speed)'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상생 위한 임밸런스 해소 절실= 미국과 유럽은 올해 들어 차례로 더블딥 우려를 불러일으키며 글로벌 경제의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했다. 일본은 엔고와 디플레이션으로 '잃어버린 20년'을 향해 가는 듯한 모습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선진국 경제를 향해 옐로카드를 꺼내 들었다. IMF는 지난 10일 G20 재무장관들을 위해 만들어 공개한 브리핑 노트에서 선진국 금융 부문의 취약함과 신용 위기를 비판하는 한편 대부분의 선진국들에게 재정적자 감축을 요구했다. IMF는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미 부동산 시장의 재침체 등이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리스크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선진국 경제가 안정되지 못한다면 신흥국 경제도 앞날을 장담하기 어렵다. 특히 글로벌 임밸런스를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IMF도 이번 브리핑 노트를 통해 선진국은 수출을 확대하고 재정적자를 감축하는 데 집중해야 하며 신흥국은 수출 성장에 대한 지향성을 글로벌 시장의 수요 활성화로 옮겨야만 공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