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한 사고원인 규명 없이 운행재개, 유사 사고 재발 가능성

중국 원저우(溫州)시에서 23일 밤에 발생한 고속전철 충돌-추락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39명으로 늘어났다. 당초 공식발표했던 35명보다 4명이 늘어났는데, 추가로 확인된 사망자는 사고 잔해에서 발견됐다. 인명 구조를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사고처리 원칙에 위배되는 졸속처리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중국 철도부는 사고가 난 지 이틀도 지나지 않은 25일 오전6시부터 사고 구간의 고속전철 운행을 재개해 이날에만 70여 차례 운행했다. 하지만 사고 원인이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운행을 재개한 것은 또 다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너무 서두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고의 원인이 “벼락으로 인해 전기가 끊김으로써 앞서 가던 열차(D3115호)가 멈춰 섰고 자동신호기 작동이 중단된 것”이라는 철도부 발표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이번 사고의 원인과 관련돼 풀리지 않는 3대 의문점을 정리해 본다.
의문1. 고속철 운행 자동제어시스템은 왜 작동하지 않았나?
철도의 자동제어시스템은 운행 중인 열차의 속도, 전방 및 후방 열차와의 운행간격, 각 열차의 위치 등이 자동적으로 측정돼 열차의 추돌과 정면충돌을 방지하게 설계돼 있다. 중국의 고속전철과 일반철도도 중국열차운행통제시스템(CTCS)가 갖춰져 있다. 하지만 이번 원저우 고속전철 추돌사고에는 이런 자동제어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중앙 철도부의 왕용핑(王勇平) 대변인은 “정상적 상황이라면 (자동제어시스템이 작동돼) 열차 추돌사고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엔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자동제어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시인한 것이다.
중국의 CTCS, 즉 철도자동제어시스템이 이처럼 유사시에 작동하지 않을 정도로 부실하다면, 벼락 등으로 전기가 일시적으로 끊길 경우 원저우 열차 추돌사고와 유사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된다. 열차 승객을 불안하게 만드는 이유다.
의문2. 뒤에서 들이박은 D301열차, 추돌 전에 고장 있었다?
이번 추돌사고에서 벼락을 맞고 정차중인 열차(D3115호)를 뒤에서 들이박은 D301열차는 추돌사고 전에도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자주 정차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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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당일, 톈진(天津)에서 D301열차를 탔던 리앤딩(40, 여)씨는 “당일 오전8시10분경 톈진에서 탑승한 뒤 D301 열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고 밝혔다. 리씨는 “D301열차는 원래 (이번 사고가 발생한 지역의 전역인) 융자(永嘉)역에서 정차하지 않아야 하지만 융자역에서 몇 분을 정차한 뒤 오후 8시24분경에 출발한다는 방송을 한 뒤 발차했다”며 “출발한 뒤 속도도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당초 열차 운행 시각표에 따르면 뒤에서 추돌한 D301 열차가 사고시간에 앞에 있던 D3115 열차보다 먼저 사고지역을 통과했어야 하는데, D301열차의 ‘알 수 없는 고장’ 때문에 늦어지면서 사고가 발생하는 이유가 됐던 셈이다.
D301열차엔 어떤 고장이 있었던 것일까?
의문3. D3115열차 기관사, 중앙통제실, D301열차 기관사는 사고 전에 서로 연락했나?
앞서 달리던 D3115열차가 벼락을 맞아 멈춰 선 뒤 기관사는 무전이나 핸드폰으로 중앙통제실에 정차 사실을 보고했나? 중앙 통제실을 이 보고를 받고 D301열차 기관사에게 전방의 열차가 정차해 있으니 서행하라는 지시를 내렸는가? D301열차 기관사는 전방의 열차가 정차돼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는가?
벼락으로 정전이 돼서 사고지역 신호기가 작동되지 않았고, 중앙통제시스템(CTCS)이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장’ 때문에 일시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유선으로라도 이런 연락이 갖춰지는 게 정상적 사고 처리 프로세스라고 할 수 있다.
사고 발생 뒤 양 열차에 탑승했던 승객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사고 당시, 앞서 가던 D3115 열차는 시속 20km 정도로 서행하고 있었고, 뒤따라 가던 D301열차는 시속 100km 안팎이었다. 게다가 두 열차가 융자역을 출발할 때 10분의 간격이 있었다.
이번 사고경위를 밝혀줄 수 있는 ‘블랙박스(운행기록기)’가 24일 발견돼 국무원의 ‘7.23 원저우 고속전철 사고 특별조사반’으로 이송돼 분석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조사결과를 언제 명확히 밝힐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 함구하고 있다.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대형 참사가 일어났고, 사고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사고현장에 생존자와 사망한 사람의 시신이 있는지도 면밀히 살피지 않고 서둘러 사고현장을 치우고 운행을 재개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