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도청이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철옹성벽 같은 출입처를 두고 한 선배에게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 선배는 후배의 넋두리에 "범죄"라고 딱 잘라 말했고, 승부욕에 사로잡혔던 후배는 각성했다. 취재 경쟁이 치열한 현장에서 취재와 범죄의 경계는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다. 옆에서 바로 잡아주는 선배와 데스크가 없다면, 순간의 유혹에 잘못된 선택을 하는 기자들이 종종 나온다.
유럽의 시각으론 변방인 호주와 뉴질랜드 언론에서 출발해 영미 언론을 장악한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81) 뉴스코퍼레이션 회장이 이같은 경계선을 넘나든 끝에 노년에 치욕적인 평가를 받았다. 영국 하원 문화·언론·스포츠 위원회는 세계 2위 미디어그룹 뉴스 코퍼레이션을 소유한 머독 회장에게 다국적기업을 경영하기엔 부적합한 인물이라고 혹평했다.
뉴스 코퍼레이션의 2대 주주인 알왈리드 빈 탈랄 사우디아라비아 왕자조차 머독 회장의 경영 방침에 불만을 드러냈다. 씨티그룹, 애플, 사보이호텔 등의 지분을 보유한 세계 29위 갑부인 알왈리드 왕자는 "(최근 전화·이메일 해킹 스캔들이) 이 기업의 명성에 도움이 되지 않고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지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위있는 언론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익성을 추구한 머독 회장의 경영방침을 비판해왔다. 그러나 조직 전체가 머독 회장의 가치관을 받아들이자, 무서운 결과가 나타났다.
기자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보 빼내기에 집중한 결과 언론사 전체가 범죄 조직으로 변모했다. 탐정을 고용해 유명인의 휴대전화를 도청하고, 이메일을 해킹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으며, 경찰을 비롯한 공무원을 돈으로 매수해 정보를 빼냈다.
하원 언론위는 "우리가 숙고하기엔 이 문화가 고위층에서 조직 전반으로 퍼져나갔다"며 "(머독이) 고의적인 맹목으로 그의 기업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못 본 체 해, 뉴스 코퍼레이션에서 기업 지배구조가 사실상 부재한단 점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안팎에서 쏟아지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머독 회장은 트위터에서 점잖게 세계 경제와 정치를 걱정하고 있다. 선정적 보도로 가득한 타블로이드 신문으로 번 돈으로 중앙일간지 더 타임스, 미국 경제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 세계적인 출판사 하퍼콜린스 등을 인수한 그는 해킹 스캔들을 '적들의 모함'이자 한때의 시련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전세계 50여 개국에 800개가 넘는 회사를 거느린 뉴스 코퍼레이션의 수장이 승부에 사로잡힌 가치관을 쉽사리 바꿀 것 같지 않기에, 영미 언론계는 그를 언론의 "독"이라고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