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10년만기 국채금리가 지난주 후반 마감 기준으로 사상 최고인 7.267%까지 치솟은데 이어, 23일엔 장중으로도 역대 최고 수준인 7.5%선까지 폭등했다. 스페인 국채시장 불안을 서둘러 진화하지 못할 경우 스페인의 전면적 구제금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유럽중앙은행(ECB) 밖에 기댈 곳이 없다고 판단한 스페인은 ECB의 지원을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ECB는 스페인의 요청을 거부하고 있어, 글로벌 금융시장이 애를 태우고 있다.
호세 마누엘 가르시아 마르가요 스페인 외무장관은 22일(현지시간) 유럽연합 외무장관회의에서 "유럽의 구조가 변하지 않을 경우 누군가는 유로에 베팅해야 하는데, 베팅할 곳은 ECB 밖에 없다"고 밝혔다. 유로존을 살리기 위해 누군가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데, 그 역할을 할 곳이 ECB 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마르가요 장관은 더 나아가 ECB가 "지하 은행(an underground bank)"처럼 행동한다며 "ECB가 숨은 채 스페인 국채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고, 금융시장은 스페인의 노력에 뺨을 때렸다"고 지적했다.
지난주 금요일 스페인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마감 기준으로 사상 최고인 7.267%까지 치솟은데 이어, 23일엔 장중으로도 역대 최고 수준인 7.506%로 상승했다. 10년물 금리 7%선은 디폴트(채무불이행) 내지 전면적 구제금융 신청의 전조로 여겨진 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앞서 6월말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유로존 정상들은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위기국의 국채 시장 안정을 위해 구제기금을 '유연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활용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일부 회원국의 반대로 구제기금의 국채매입과 같은 세부항목이 확정되지 않았다.
또 유로존 정상들은 구제기금을 통해 스페인 은행권에 최대 10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합의했지만, 스페인 은행에 자금을 직접 지원하지 않고 스페인 정부기관을 통해 은행들을 지원케 했다. 이 때문에 은행 지원금은 고스란히 스페인 중앙정부의 부채로 쌓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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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일간지 텔레그라프는 지난달 EU 회의 합의가 스페인 정부와 은행을 분리하는 데 실패한 엉터리이기 때문에, 1000억유로 규모의 스페인 은행 구제금융이 금융시장을 진정시키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보다 못한 국제통화기금(IMF)도 ECB의 최종대부자 기능을 언급하며, ECB에 위기 해결에 더 큰 역할을 하라고 촉구했다. 금융시장에서는 5000억유로에 불과한 ESM으로는 시장을 안정시킬 수 없다고 우려한다. 이에 따라 ECB가 나서야 스페인 위기가 고비를 넘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지난 21일 르몽드와 인터뷰에서 유로존 붕괴 위험이 없다며, 당장 스페인 국채를 매입할 뜻이 없다고 확실히 밝혔다. 드라기 총재는 "ECB의 권한은 각국의 금융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물가 안정을 보장하고 독립적으로 금융 시스템 안정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과거 ECB의 이력을 본다면 상당히 이례적인 반응이다. ECB는 과거에도 유로존 채권시장 안정을 위해 유통시장에서 회원국의 국채를 사들이는 국채매입 프로그램(SMP)를 가동했고, 드라기 총재가 ECB를 맡고 나서는 양적완화의 일환인 3년 만기 장기대출(LTRO)을 작년 말과 올 초 2차례에 걸쳐 실시하는 등 금융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전력이 있다.
ECB가 스페인 개입을 미적거리는 이유는 우선 한정된 정책 수단 때문이다. 스페인의 긴축 정책 조건을 완화해주고,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등 이미 많은 양보를 한 상태에서 한정된 정책 수단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시기를 조절하는 측면이 있다. 드라기 총재는 최근 금리 인하 당시 "중앙은행이 한꺼번에 화력을 다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게다가 앞으로 스페인 주(州) 정부의 중앙정부 지원 요청은 계속 이어져, 그 때마다 스페인 국채금리가 치솟을 텐데, ECB와 ESM이 무한정으로 스페인 국채를 사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발렌시아는 중앙 정부에 지원을 신청했고 카탈루냐, 무르시아, 카스티야 라 만차, 발레아레스 제도, 카나리아 제도, 안달루시아 등 6개주가 중앙정부 지원을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고 엘 파이스는 보도했다.
스페인 정부의 무능 탓도 있다. EU 관계자들은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를 통해 스페인 금융과 재정 그리고 정치 신뢰성이 "0"이라고 평가했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지난해 12월 취임 이후 스페인의 위기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갔을 뿐 위기 해결을 ECB와 ESM에게만 기대고 있다.
ECB가 스페인의 자구 노력을 압박하기 위해서든, 라호이 총리의 퇴진까지 고려한 것이든 속내를 구체적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개입을 미룬 것은 이유 있는 '지연'이란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해 8월 이탈리아 국채금리가 7%를 돌파했을 때 ECB는 이탈리아 국채를 사들이는 한편 베를루스코니 당시 총리에게 서한을 보내 개혁을 요구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EU의 요구를 달성하는 데 실패하자, ECB는 국채 매입을 줄였고 결국 베를루스코니는 ECB의 사퇴 압력 끝에 총리에서 물러났다.
텔레그라프는 스페인의 긴축 정책이 가뜩이나 어려운 스페인 재정위기를 더 악화시킬 것이라며, 스페인을 비롯한 재정위기국들이 ECB 운영위원회 투표권으로 ECB 통화정책의 변화를 유도해 ECB를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