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7일 하마스가 수백 명의 이스라엘 민간인을 살해한 몇 시간 뒤 이 기습공격을 기획한 인물이 드물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마스의 SNS 채널로 내보낸 영상에는 하마스 군사지도자 무함마드 데이프의 실루엣이 나타났고, 이 실루엣 뒤로 미리 녹음해둔 육성이 흐르며 성명을 발표하고 있었다. 그의 묵직한 목소리는 14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공격을 선언하면서도 이상할 정도로 차분했다.
하마스는 이슬람 조직이다. 하지만, 데이프의 성명은 종교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레바논, 이란, 예멘, 이라크, 시리아의 형제 이슬람 저항세력이 싸움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다른 종교를 가진(또는 가지지 않은) 전 세계 시민들에게도 시위를 벌여달라고 부탁했다. 성명서를 다 읽은 후 그의 모습은 사라졌고 공포만 남겨졌다.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 중에 데이프만큼 이스라엘인을 많이 죽인 사람은 없다. 그는 싸움 중 입은 부상을 치료하던 시기를 빼고 1990년 중반부터 하마스의 군사조직을 이끌어왔다.
이렇게 오랫동안 변함없이 자리를 지킨 것은 암살에 의해 계속 흔들려왔던 조직의 지도부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의 지휘 아래 하마스의 전술은 시간이 흐를수록 아마추어 느낌이 약해졌고 더욱 파괴적으로 되었다. 처음엔 대규모 자살폭탄 공격이었다가 나중엔 장거리 미사일 공격이 되었다.
암살 공격을 받아 팔다리를 잃고서 휠체어에 의존해 생활하는 그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한 단계 높이 확전시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로 내몰았다.
이스라엘과의 타협을 추구하는 하마스 내 그의 반대파는 확실히 힘을 잃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가자에서 억류되어 있는 200여명의 인질들의 운명, 이스라엘의 맹렬한 공습과 예상되는 지상공격에 대한 반응―은 이제 한 명의 기획과 계산에 달려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사람들, 중동지역은 그 어느 때보다 중대한 갈림길에 놓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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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데이프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오랫동안 서방의 스파이들은 그에 대해서 알 길이 막막했다. 언론에는 그의 어린 시절 모습을 담은 색 바랜 사진 몇 장만 공개됐을 뿐이다.
어떤 이들은 그가 사실은 오래전에 죽었고 그의 이름은 선전선동 목적으로 가공된 전설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쉴로모 엘다르라는 이스라엘 기자는 하마스의 많은 조직원들을 인터뷰했는데 이스라엘 정보기관 신베트 조차도 그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 막강한 이스라엘 정보기관도 "거리에서 바로 옆에 지나가고 있는 그를 못 알아볼 것"이라고 말한다
데이프는 아랍어로 "손님"이라는 말이다. 이 하마스 지도자가 자신의 별명으로 "손님"을 택한 것은 수십 년 동안 적을 따돌리기 위해 이곳저곳 전전하던 자신의 생활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무함마드 디아브 알나스리라는 본명을 가진 그는 1965년 가자 남부지역의 칸유니스 난민캠프에서 태어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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