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성전환 시키려고 은행털이"…21억 손에 쥐고 인질극[뉴스속오늘]

"연인 성전환 시키려고 은행털이"…21억 손에 쥐고 인질극[뉴스속오늘]

이은 기자
2025.08.22 06:00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존 보이토위츠가 1972년 8월 2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체이스 맨해튼 은행을 털려다 14시간 인질극을 펼친 끝에 체포됐다. 사진은 존 보이토위츠가 다음날인 23일 체포된 뒤 촬영한 머그샷. /사진=Drafthouse Films, 엑스(X·옛 트위터)
존 보이토위츠가 1972년 8월 2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체이스 맨해튼 은행을 털려다 14시간 인질극을 펼친 끝에 체포됐다. 사진은 존 보이토위츠가 다음날인 23일 체포된 뒤 촬영한 머그샷. /사진=Drafthouse Films, 엑스(X·옛 트위터)

1972년 8월 22일(이하 현지시간). 존 보이토위츠(John Wojtowicz)가 공범 두 명과 함께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체이스 맨해튼 은행을 털려다 인질극까지 벌이게 됐다. 14시간 동안 경찰·FBI와 대치한 끝에 이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이날 은행 업무가 끝나기 직전인 오후 2시55분쯤 보이토위츠(당시 27세)는 살바토레 나투릴레(당시 18세), 로버트 웨스틴버그(당시 20세)와 함께 산탄총과 38구경 권총, 소총 등을 들고 체이스 맨해튼 은행으로 향했다.

보이토위츠는 은행에 들어와 창구 직원에게 "이건 당신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다"(This is an offer you can't refuse.)라는 쪽지를 건넸다. 영화 '대부'의 유명 대사 "난 그 녀석이 거절하지 못할 만한 제의를 할 거야"(I'm going to make him an offer he can't refuse.)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이들은 영화 '대부'를 보고 은행 강도 범행을 계획했고, 여러 차례 연습하기도 했다. 연습 과정에서 길거리에 총기를 떨어뜨리는가 하면 도주 연습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내기도 했다. 범행을 시도하려던 한 은행에서는 웨스틴버그가 어머니 친구를 발견해 강도질을 할 수 없게 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시행착오 끝에 세 사람은 체이스 맨해튼 은행을 털기로 결심했다.

은행 털려다 인질극…2000명 몰려 대치 상황 지켜봤다

이날 은행 안에는 지점장과 창구 직원 6명, 무장하지 않은 경비원 등 총 8명이 있었다. 나투릴레는 지점장에게 총을 겨눴고, 창구의 현금을 쓸어 담고 수표 등을 챙겼다. 이들은 직원들 금고로 데려가 금고 비밀번호를 알아내려 하기도 했다.

보이토위츠는 창구 직원들에게 전화가 오면 평소처럼 받으라고 지시했다.

이때 마침 전화가 걸려 왔다. 창구 직원 중 한 명을 다른 지점으로 보내려던 은행 임원의 전화였다. 임원은 전화를 받은 지점장의 반응에서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감지했고, '지점에 문제가 있냐'고 물었다. 이에 지점장은 "정말 그렇네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라는 말로 자연스럽게 문제 상황을 알린 뒤 전화를 끊었다.

임원은 상황을 바로 알아챘고, 은행 보안팀에서 바로 뉴욕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곧장 출동해 은행을 포위했다. FBI(미연방수사국) 대원들도 현장으로 출동했고, 저격수가 인근 건물 옥상에 배치됐다.

보이토위츠와 나투릴레는 은행에 인질 8명을 붙잡아둔 채 경찰과 대치했다. 언론에도 은행 강도 사건이 알려지면서 현장에 몰린 약 2000명의 인파가 현장에서 대치 상황을 지켜봤다.

보이토위츠는 은행 뒷문으로 경찰이 들이닥칠까 우려해 경고 사격을 하는 등 긴장 속에 대치를 이어갔고, 은행 밖으로 나와 "물러서라"라고 외치는가 하면 돈을 뿌리기도 했다.

대치 상황이 길어지자 FBI가 보이토위츠와 협상에 나섰다. 저녁 8시쯤 보이토위츠는 먹을 것을 요구했고, 은행으로 피자가 배달됐다. 보이토위츠는 은행 돈으로 배달 기사에게 많은 팁을 주기도 했다.

보이토위츠와 나투릴레는 당시 은행 금고가 반쯤 비어있었음에도 현금 3만8000달러와 17만5000달러 상당의 수표를 훔쳤다. 이는 현재 가치로는 한화 약 21억원에 달하는 돈이다. 그러나 이들은 거금을 손에 쥐었음에도 탈출 방도가 없었다.

보이토위츠는 FBI에 자신의 여러 가지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 인질을 풀어주는 대신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비행기로 탈출하게 해달라고 요구했고, 이와 함께 정신병원에 입원한 연인 어니스트 아론을 불러달라고 했다.

연인 성전환 수술비 위해 은행털이 결심…FBI 작전에 체포

아론은 보이토위츠가 은행 강도 행각을 벌이게 된 이유였다.

베트남전 때 자진 입대했던 보이토위츠는 군 복무를 마친 후 체이스 맨해튼 은행에서 일하다 만난 여성 카르멘 비풀코와 1967년 결혼한 바 있었다. 둘 사이엔 두 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보이토위츠는 이후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깨달았고, 이를 아내에게 숨기려 했으나 결국 결혼 2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이후 보이토위츠는 1971년 아론을 만났다. 그해 아론은 자신을 여성이라 여기며 성전환 수술을 원하던 인물이었다. 그는 성전환 수술받고자 했지만, 여력이 안 되자 절망에 빠져 약물 과다 복용으로 극단적인 시도를 해 정신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보이토위츠는 처음엔 아론이 자신을 떠날까 두려운 마음에 성전환 수술을 반대했지만, 그를 위해 은행을 털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다음 날 새벽 보이토위츠는 FBI와 긴 협상 끝에 인질을 풀어주는 대신 나투릴레와 함께 해외 도피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보이토위츠와 나투릴레는 인질들과 함께 리무진에 올랐고 은행을 떠나 공항으로 향했다. 보이토위츠의 연인 아론도 함께했다.

그러나 이는 FBI의 함정 작전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제압 작전이 펼쳐졌고, 이 과정에서 나투릴레는 경찰에 사살됐다. 보이토위는 바로 항복해 현장에서 체포됐다. 약 14시간의 인질극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징역 20년 중 5년 복역…영화 판권·수익으로 연인 성전환 지원
존 보이토위츠의 은행 강도 사건 이야기는 영화 '뜨거운 오후'로 제작됐다. /사진=영화 '뜨거운 오후' 스틸컷
존 보이토위츠의 은행 강도 사건 이야기는 영화 '뜨거운 오후'로 제작됐다. /사진=영화 '뜨거운 오후' 스틸컷

자신의 혐의를 인정한 보이토위츠는 1973년 4월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고, 그 중 5년을 복역한 뒤 1978년 풀려났다. 도망갔던 공범 웨스틴버그는 사건 3일 뒤 경찰에 자수해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보이토위츠의 이야기는 1975년 영화 '뜨거운 오후'로 제작됐다. 보이토위츠가 범행 전 봤던 영화 '대부'의 알 파치노와 존 카제일은 영화 '뜨거운 오후'에도 출연했다.

400만 달러(현재 가치 약 56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이 영화는 5600만 달러(약 783억원)에 달하는 흥행 이익을 거뒀다. 1976년 제4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받기도 했다.

보이토위츠는 이 이야기에 대한 판권으로 7500달러(약 1050만원)와 영화 순수익의 1%를 받았고, 이를 아론에게 줬다.

아론은 성전환 수술을 해 트랜스젠더 여성 엘리자베스 에덴으로 살았으며, 보이토위츠 출소 후 그와 결별해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 1987년 에이즈 관련 폐렴으로 사망했으며 보이토위츠는 에덴의 장례식에 참석해 추도사를 했다.

출소 후 뉴욕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낸 보이토위츠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복지 수당을 받으며 근근이 생활했고, 암 투병 끝에 2006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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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 기자

패션·뷰티·라이프스타일·연예 분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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