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슈퍼 리치 과세안'으로 불리는 초부유층 상속세 50% 부과 안건이 스위스에서 부결됐다. 고액 자산가와 가족기업들의 해외 이주 등 국부 유출을 우려한 결과로 보인다. 여성의 병역 의무화 안건도 부결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30일(현지시간) 스위스 총리실은 이날 국민투표 결과 슈퍼리치 과세안은 찬성 21.7%, 반대 78.3%로 부결됐다고 밝혔다. 스위스 26개 주(canton) 모두에서 반대표가 과반을 차지했다. 일부 주에서는 반대가 90%를 넘었다.
이 안건은 급진 좌파 성향의 '청년사회주의자(JUSO)'가 발의한 것으로 기후 대응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상속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들은 "부자들이 경제 성장의 수혜를 가장 많이 누리는 만큼, 지구 환경 훼손의 책임도 더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속·증여 자산이 5000만 스위스프랑(약 914억 원) 이상일 경우 연방 세금을 50% 부과하자는 게 골자다. 법안 발의자들은 이 세금으로 연간 60억 스위스프랑(약 10조원)을 거둬들일 수 있을 것으로 계산했다. 정부 등 반대자들은 초부유층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국외로 떠날 수 있어 나라 경제가 약화할 수 있다며 이를 반대해왔다.
국민투표 부결로 안건은 자동 폐기된다. FT는 "스위스가 고액 자산가들이 선호하는 국가로서 지위를 잃고 있다는 일부 우려가 표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며 "부유층의 이탈을 불러 세수를 오히려 줄이고 재정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고 분석했다.
스위스계 글로벌 투자은행 UBS의 '2023년 글로벌 부 보고서'에 따르면 스위스는 성인 1인 평균 자산이 68만5226달러(약 9억3000만원)로 전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또 스위스 내 상위 1% 부유층이 전체 자산의 45%를 보유하고 있고, 상위 10%의 납세자가 소득세 수입의 53% 차지한다.
한편 이날 국민투표에 함께 올라간 '시민 복무 이니셔티브'란 이름의 여성 병역 확대 방안도 부결됐다. AFP통신에 따르면 스위스 유권자의 84%가 남성에만 적용되는 병역 의무를 여성에까지 확대하자는 안건에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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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약 900만명의 스위스는 징병 대상 연령 남성들의 병역이나 민방위대 참여가 의무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는 병원이나 노인 시설 등에서 대체 복무가 가능하다. 매년 약 3만5000명의 남성이 의무 복무에 참여하고 있다. 스위스 정부는 군대와 민방위에 이미 충분한 인력이 있으며, 필요한 인원 이상을 추가로 모집할 경우 노동 인력이 줄고 막대한 비용도 초래된다고 이 안에 반대해 왔다. 스위스 정부는 여성에 대한 의무 병역을 "성평등을 향한 한 걸음"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자녀와 가족 돌봄, 가사 노동이라는 무급 노동의 상당 부분을 떠안고 있는 많은 여성에게 추가적 부담을 지울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