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버블 우려보다 더 큰 충격…고평가 기술주에서 탈출 러시[오미주]

AI 버블 우려보다 더 큰 충격…고평가 기술주에서 탈출 러시[오미주]

권성희 기자
2026.02.05 18:05

[오늘 주목되는 미국 주식시장]

AI(인공지능)가 소프트웨어 산업을 위협할 수 있다는 불안이 기술주 침체로 번지고 있다. 기술주 밸류에이션이 너무 높아 자금이 그간 소외됐던 업종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지수는 4일(현지시간) 1.5% 내려가며 이틀째 1%가 넘는 하락세를 이어갔다. 소프트웨어(SW)에서 시작된 매도세가 반도체 등 AI 인프라 관련 주식으로 확산된 탓이다. 나스닥지수가 2일 연속 1%대의 하락률을 보이기는 지난해 4월 상호관세 충격 이후 처음이다.

지난 3~4일 이틀간 다우존스지수와 나스닥지수 움직임/그래픽=김지영
지난 3~4일 이틀간 다우존스지수와 나스닥지수 움직임/그래픽=김지영

전날(3일) 하락은 앤트로픽이 자사 AI 모델 '클로드 코워크'에 법률 계약서 검토와 데이터 분석 등 전문 업무용 자동화 도구를 부가했다고 발표하면서 소프트웨어주 위주로 이뤄졌다. 하지만 이날 하락은 더 광범위했다.

반도체회사인 AMD가 실망스러운 매출 전망으로 17% 급락했고 데이터 저장장치 회사인 샌디스크도 16% 추락했다. 긍정적인 실적으로 전날 주가가 7% 급등했던 팔란티어도 12% 가까이 미끄러졌다. 지난주 어닝 서프라이즈로 주가가 큰 폭으로 뛰었던 메타 플랫폼스는 이번주 들어 6.6% 후퇴했고 AI 대장주 엔비디아는 8.9% 하락했다.

베어드 프라이빗 웰스 매니지먼트의 시장 전략가인 마이클 안토넬리는 이번주 엔비디아까지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진데 대해 "엔비디아가 서비스형 소프트웨어와 무슨 상관이 있나"라며 "소프트웨어에서 입은 손실을 메우기 위해 많이 오른 주식 일부를 팔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투자자들이 비싼 주식을 먼저 팔고 질문은 나중에 하는 식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의견이다.

이전에도 AI 수혜주의 급락은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이번 AI주 충격은 이전과 2가지 점에서 차이가 난다. 첫째는 속도와 규모가 압도적이란 점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불과 이틀만에 기술기업의 주식과 회사채, 대출 채권에서 수천억달러의 가치가 증발했다.

특히 AI 발전의 직격탄을 받은 소프트웨어주의 타격이 심했다. 아이셰어즈 익스팬디드 테크-소프트웨어 섹터 ETF(IGV)는 지난 7거래일간 시가총액이 1조달러 증발했다.

소프트웨어 기업의 고통은 주식시장을 넘어 신용시장에까지 확산됐다. 피치북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기업의 대출 채권 평균 가격은 지난해 말 1달러당 94.71센트에서 최근 91.27센트로 떨어졌다.

투자자들이 소프트웨어 기업의 대출 채권을 매수할 때 요구하는 벤치마크 금리 대비 초과 수익률(스프레드)은 지난해 말 4.78%포인트에서 5.95%포인트로 올랐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기준으로 소프트웨어 기업의 대출 채권 가운데 약 3분의 1인 250억달러 규모가 1달러당 80센트 아래로 거래돼 부실채권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는 한달 전 110억달러에 비해 두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소프트웨어 기업뿐만이 아니다. 블룸버그 미국 레버리지 론 지수에 포함된 기술기업의 대출 채권 중 177억달러 이상이 지난 4주간 부실채권 수준으로 가격이 미끄러졌다.

AI주 급락의 원인도 이전과 다르다. 이전에는 AI 분야에 너무 많은 돈이 투자돼 버블이 형성되고 있다는 우려가 원인이었지만 이번에는 AI가 수많은 기업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대체해 기존 기업들의 영역을 잠식할 것이란 불안이 촉매가 됐다.

존스트레이딩의 최고 시장 전략가인 마이클 오루크는 "나는 이것이 과잉 반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지난 2년간 우리는 AI가 여러 세대에 걸친 기술로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이야기했고 최근 몇 주간 실제 사례들이 나타나는 조짐을 목격했다"고 지적했다.

아이셰어즈 익스팬디드 테크-소프트웨어 섹터 ETF(IGV) 추이/그래픽=이지혜
아이셰어즈 익스팬디드 테크-소프트웨어 섹터 ETF(IGV) 추이/그래픽=이지혜

다만 AI가 지금 시장이 두려워하는 것처럼 실제로 소프트웨어 산업을 상당 부분 대체하며 파괴할 것인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기업인 서비스나우는 지난달 말 발표한 실적이 시장 예상을 상회했으며 AI로 인해 고객들이 이탈하고 있다고 밝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최근 몇 년간 AI 도구들을 개발해 왔음에도 아직 성과가 미미한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의 AI 업무 도구인 코파일럿은 유료 사용자가 1500만명으로 수억명에 달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웨어 전체 사용자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최근 AI의 발전 속도는 AI 선두업체들이 기존 기술기업들을 생각보다 더 빠르게, 더 폭넓게 앞설 수 있음을 시사한다. SLC 매니지먼트의 이사인 덱 멀라키는 "올해는 흥미로운 한 해가 될 것"이라며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은 누가 승자가 되고 누가 패자가 될지, 이 과정에서 누가 가장 취약한지 가려내는 산업 재편의 초기 단계"라고 지적했다.

다만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3일 밤 시스코 시스템즈가 개최한 행사에 참석해 "많은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AI로 대체될 것이라는 이유로 주가가 하락 압력을 받고 있다"며 "이는 세상에서 가장 비논리적인 생각"이라고 밝혔다.

월가에서는 순환매도 최근 기술주 하락의 주요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반도체를 비롯해 주가가 많이 오른 기술주에서 자금을 빼내 소외됐던 섹터로 옮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S&P500지수는 4일 0.5% 하락했지만 11개 업종 중 7개 업종이 상승했다. 에너지와 필수 소비재 업종은 올들어 12% 이상씩 올랐다. 특히 이날 장 중에 S&P500지수 내 92개 종목이 52주 신고가를 경신했다. 이는 2024년 11월 이후 하루 동안 가장 많은 52주 신고가 기록이다.

기술기업들은 이번 어닝 시즌에 호실적을 발표하고도 상승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월가에서는 주가가 과도하게 올라 변동성에 취약해졌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크레셋 캐피털의 최고 투자 전략가인 잭 애블린은 "현재와 같은 밸류에이션에서는 시장 반응이 상당히 가혹해질 수 밖에 없다"며 "지금은 기대치가 매우, 매우 높다"고 말했다.

메리디안 에쿼티 파트너스의 수석 매니징 파트너인 조너선 코피나는 기술주의 밸류에이션이 너무 높아 "순환매가 일어나면 과거보다 더 빠르게 일어난다"며 "지금 시장에서 거래하려면 빨리 들어갔다가 빨리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4일 장 마감 후 알파벳은 호실적을 발표하고도 올해 자본지출이 전년 대비 약 2배 늘어날 것이라고 밝히면서 주가가 시간외거래에서 2% 가까이 하락했다. 퀄컴은 올 1~3월 분기 매출 가이던스가 시장 전망치를 하회하면서 시간외거래에서 주가가 10%가량 급락했다.

반도체 설계기업인 암(Arm) 홀딩스는 전 분기 실적과 이번 분기 매출 가이던스가 모두 시장 전망치를 상회했지만 전 분기 라이선스 매출이 기대에 못 미쳤다는 이유로 시간외거래에서 8% 이상 하락했다.

5일 장 마감 후에는 매그니피센트 기업인 아마존과 비트코인 채굴업체인 아이렌, 비트코인 자산을 세계 최대 규모로 보유한 스트래티지가 실적을 공개한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권성희 기자

안녕하세요. 국제부 권성희 기자입니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