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5000억달러 조달하며 RVG 제공
메타·브로드컴 등 700억달러 규모
"AI 투자 경쟁이 재정적 취약성 키워"
![[워싱턴=AP/뉴시스] 젠슨 황(왼쪽)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29일(현지 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덜레스 국제공항 현대화 사업 관련 발언을 들으며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2026.07.30. /사진=민경찬](https://thumb.mt.co.kr/cdn-cgi/image/f=avif/21/2026/08/2026081714274034520_1.jpg)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 경쟁으로 빅테크 기업들 사이에서 이른바 '숨은 부채'의 하나로 불리는 잔존가치보증(RVG) 규모가 급증했다. 이것이 금융 시장의 잠재적 위험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는 관측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최근 보고서에서 "AI 투자 경쟁이 재정적 취약성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메타, 브로드컴 등 주요 AI 기업들의 잔존가치보증이 700억달러(약 99조 3000억원)에 이르는 걸로 추산된다. 엔비디아는 최근 블랙록 등 주요 6개 자산운용사들과 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5000억달러 규모 자금조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수백억달러를 잔존가치 보증(RVG)으로 제공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빅테크 기업은 통상 데이터 센터 건립시 특수목적법인(SPV)를 설립하고 이 SPV가 채권을 발행, 투자금을 유치한다. 데이터센터를 완공하면 임대료를 통해 채권을 상환하는 식이다. 만약 이 과정에 차질이 생길 경우 RVG는 부족분을 보전해주는 역할을 한다. 보증인의 강력한 신용등급을 담보로 자금조달 비용을 낮추는 셈이다. RVG는 데이터센터, 반도체 개발 등 AI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자금조달 방안으로 자리잡고 있다.
미국 일반회계기준(US GAAP)에 따르면 손실 발생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을 때만 대차대조표에 부채로 기록한다. SPV에 대한 임대료는 물론, RVG 또한 부채로 기록되지 않아 '그림자 부채' 또는 숨은 부채로 불린다. 5대 하이퍼스케일러로 불리는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알파벳·메타·오라클의 데이터센터 임대료, GPU 공급약정 등 숨은 부채 합계가 1조6500억달러에 이른다는 집계도 있다.
블룸버그는 특히 RVG에 대해 "엔비디아나 브로드컴 같은 거대 기업에게는 공짜 점심 같은 존재"라며 "재무제표상 부채로 잡히는 것 없이 고객에 대한 매출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엔비디아 또한 공시를 통해 "(RVG) 지급 가능성이 낮아 현재까지 부채가 기록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X에서 "자사가 개별 사례별로 평가하여 사업 기회의 최대 25%까지 잔존 가치 지원 메커니즘을 제공할 수 있다"며 추가 발행 가능성도 시사했다.

잔존가치 보증 계약 방식이 업계 전반에 퍼진 것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최소 몇 년 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메타는 블루아울 캐피털과 손잡고 루이지애나에 '하이페리온'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기로 하면서 이 방식을 썼다. 메타는 초기 4년간 센터를 임대한 후 최대 20년까지 갱신하면서 임대료로 상환한다. 메타는 20년 임대 계약을 조기에 해지할 경우 최대 280억달러 잔존가치 보증을 통해 채권자를 보호한다.
브로드컴 역시 구글이 개발한 맞춤형 AI칩(TPU)을 앤트로픽이 임차해 쓰는 자금조달 구조에서 약 300억달러 규모의 부채에 대해 잔존가치보증을 제공했다. 이 또한 무리없이 상환될 가능성이 높지만 신용평가기관들은 단기간에 이 같은 구조의 계약이 여러차례 발생하는 점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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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불황이 닥치면 대규모 부채 상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불황기에는 채무불이행과 하드웨어 가치 하락이라는 겹악재로 비용이 급격히 증가할 수 있다. 무디스는 "브로드컴의 우발채무가 크게 증가할 경우 기존 부채 대비 레버리지 비율이 낮게 유지되더라도 재정적 유연성이 제한되고 신용 등급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마리야 엔티나 더블라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최대한 좋은 등급을 받기 위해 사실상 제도를 악용하는 것"이라며 "금융공학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금융공학이 개입하면, 재무적 실체가 가려지게 된다"고 꼬집었다.
BIS는 앞선 보고서에서 "(빅테크들이) 선발 주자로서의 이점을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부채와 창의적인 자금 조달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막대한 투자금이 들어가는 만큼 생산성 향상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진다며 시장 붕괴 시 손실을 가속화시키고 금융 혼란의 위험성을 높인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과장된 우려라는 평가도 있다. 존 로이드 야누스 헨더슨 글로벌 멀티섹터 크레딧 총괄은 " 잔존가치보증이 발동되려면 토큰 사용 증가율이 급격히 떨어져야 하는데 그런 상황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우발 부채를 숨기려는 것이 아니라 자금 조달을 통해 이를 만회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