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에 뚫린 '남태평양의 보석'…60명 중 1명 HIV 감염 '국가비상사태'

마약에 뚫린 '남태평양의 보석'…60명 중 1명 HIV 감염 '국가비상사태'

김남이 기자
2026.09.19 17:00
구글 선호 매체 등록 구글에서 머니투데이 추가하기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 사례가 급증하면서 피지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검사와 치료, 예방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하고 있다고 BBC가 17일 보도했다. <사진 출처 : 英 가디언> /사진=뉴시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 사례가 급증하면서 피지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검사와 치료, 예방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하고 있다고 BBC가 17일 보도했다. <사진 출처 : 英 가디언> /사진=뉴시스

'남태평양의 보석'으로 불리는 섬나라 피지에서 HIV 감염이 급증하자 정부가 국가 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국제 마약 유통의 거점으로 이용되는 지정학적 환경과 현지 마약 사용 증가가 맞물리면서 HIV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일 영국 BBC, 가디언 등에 따르면 안토니오 라라발라부 피지 보건부장관은 최근 성명을 통해 국가 비상사태를 공식 선포했다. 랄라발라부 장관은 HIV 확산이 유행 단계에 이르러 기존의 국지적인 발병 대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피지 정부는 현재 자국 성인 60명 중 1명이 HIV에 걸린 것으로 추산한다. 5년 전 성인 167명 중 1명과 비교하면 감염률이 크게 높아졌다.

2025년 새로 HIV 진단을 받은 사람은 2060명에 달했으며 임산부도 50명 중 1명꼴로 HIV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해 HIV 양성으로 태어난 아기 59명 중 18명은 돌 이전에 사망했다. 랄라발라부 장관은 정부와 지역사회를 아우르는 긴급하고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피지는 전 세계에서 신규 HIV 감염이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국가 중 하나다. 유엔에이즈계획(UNAIDS)에 따르면 피지의 신규 HIV 감염자는 2010년부터 2025년까지 12배로 늘었다.

HIV의 빠른 확산에는 마약 문제가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피지는 국제 마약 밀매의 중간 기착지로 이용돼 왔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국제 마약 밀매 조직들은 약 10년 전부터 중남미에서 호주·뉴질랜드로 마약을 운반하며 피지를 비롯한 태평양 섬 지역을 중간 경유지로 사용했다.

또 현지에서도 메스암페타민 사용이 늘었고, 오염된 주사기 사용이 감염 확산을 부추겼다. 낮은 보건 인식과 HIV 감염자에 대한 문화적 낙인, 부족한 검사·치료 환경도 사태를 악화시킨 요인으로 지목됐다.

UNAIDS는 감염 경로가 확인된 피지 내 HIV 사례 가운데 절반 이상은 성접촉에 따른 감염이라고 밝혔다. 주사 약물 사용으로 인한 감염도 42% 이상을 차지했다.

검사와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도 문제다. UNAIDS는 2025년 기준 피지의 HIV 감염인을 약 9100명으로 추산했다. 이 가운데 자신의 감염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39%에 불과했고,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받는 비율은 22%에 그쳤다.

UNAIDS는 피지의 비상사태 선포와 관련해 "에이즈가 아직 종식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세계에 분명히 일깨워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어 HIV 유행은 단기간에 빠르게 변할 수 있기 때문에 각국이 긴급 대응할 수 있는 보건·지역사회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지 당국은 무료·자발적·비공개 HIV 검사 확대, 노출 전 예방 약물 요법 실시, 감염자 무료 치료 등을 통해 HIV 예방·치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방침이다. 이를 통해 감염 사례를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한다는 계획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김남이 기자

인간에 관한 어떤 일도 남의 일이 아니다. -테렌티우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