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은행장이 한 명 있습니다. 바로 리처드 웨커 외환은행장입니다.
그는 얼마 전 외환은행 노조가 자신의 출근을 저지할 당시 은행 앞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대화를 요구하는 장면을 연출, 사진기자들에게 소위 `그림이 되는 장면'을 만들어줬습니다. 또 외환은행 부점장들이 사직 의향서를 냈다는 소리를 전해 듣고는 "사직서 낸다면 다 받아주겠다"며 은행장으로서는 좀 감정적(?)인 발언을 해 취재기자들에게도 기사 거리를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기자가 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그의 `의리' 때문입니다. 웨커 행장은 25일 직원들이 그를 향해 "은행을 팔아먹은 은행장"이라고 비난하는 동안 자신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를 보여줬습니다.
그는 이날 `국민은행과 통합 후 인력감축은 없다' `통합 은행의 브랜드에 외환은행의 행명이 반영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겠다' `통합 전까지는 외환은행의 독립 경영을 최대한 보장한다' 등의 내용과 함께 강정원 국민은행장의 사인이 들어있는 합의서를 공개했습니다.
외환은행의 매각 자체를 원점으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은행이 팔리더라도 직원들과 조직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도록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겁니다. 은행권에서는 외환은행 매각이 확정된 이후 웨커 행장의 행동을 보며 그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론스타에 고용된 사람으로서 은행이 매각되는 마당에 자신의 위치도 불안해졌지만 끝까지 외환은행 직원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보기 좋지 않은 모양새가 연출될 게 분명하지만 노조가 막아선 은행을 매일 찾아가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과거 매각 또는 합병되는 은행의 은행장들이 노조를 피해서 도망다닌 모습과 대비되는 광경입니다. 또 국민은행과의 합의서를 보면 그가 협상 과정에서도 최대한 외환은행의 요구가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물론 웨커 행장은 자신을 고용한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 매각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하라는 역할까지 부여받았습니다. 또 매각을 깔끔히 마무리해야 앞으로 또 론스타의 부름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행동을 순수한 의도로만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행동에는 어느 정도 진심이 담겨 있다는 게 기자의 느낌입니다. 국민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는 직원들의 반발로 은행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은행 직원들을 두둔하더라. 외환은행 직원 입장에서는 당연한 행동이라며 옹호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받았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