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 박동순 거시감독국장

런던시의 새 명물인 밀레니엄 브리지는 템즈강에 놓인 최초의 보행자 전용다리이다. 이 다리는 2000년 6월 개통한 지 사흘만에 폐쇄되었다가 보완공사를 거쳐 2002년 2월에 재개통된 보기 드문 이력을 지니고 있다.
밀레니엄 브리지는 2000년대의 개막을 상징하기 위해 한 번에 최대 2000명이 건널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폐쇄의 직접적 원인은 멀미가 느껴질 정도로 다리가 흔들린다는 보행자들의 지적 때문이었다.
진상조사 결과, 많은 사람이 이 다리를 동시에 건너는 경우 약간의 흔들림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 최초의 요동에 보행자들이 몸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동시에 옆으로 발을 내딛으면서 그 흔들림이 커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금융시스템에서도 이처럼 시장참가자들의 ‘동조적’ 행태가 당초 의도와는 다른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있다. 한 은행에서 유동성 부족이나 지급 불능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남보다 먼저 예금을 찾겠다고 자신의 거래은행으로 달려들게 된다.
이는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원금을 지키려는 합리적 행동(전술한 예에서, 보행자가 몸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옆걸음을 내딛는 행동)이지만, 금융시스템은 붕괴(다리는 심하게 요동)될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금융시스템 내에서 동조적 행태가 보다 자주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금융의 자유화 및 세계화가 크게 진전되면서 각국의 실물경제 및 금융시장이 공통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더욱이 경기, 금리, 환율 등 거시경제변수의 변동은 모든 개별 금융회사에 동일하게 적용되므로 그 대응도 리스크관리 기법상 동일한 방향으로 나타나기 쉽다.
또한, 전통적인 금융업(주로 은행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가계, 투자펀드, 국경간거래 등 상대적으로 위험관리능력이 떨어지거나 규제가 느슨한 부문으로 리스크가 전가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작은 충격에도 곧잘 집단적 행동(herd behavior)을 보임으로써 금융시스템의 불안을 초래하곤 한다.
전통적으로 건전성정책이라 함은 개별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확보하려는 미시건전성 감독을 지칭하였다. 이는 개별 금융회사가 건전하다면, 전체 금융시스템의 안정은 자동적으로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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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시아 금융위기는 미시건전성 감독이 반드시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해 주었다. 당시 금융시스템의 불안은 거시경제의 충격이나 실물경제와 금융시스템과의 불균형(예: 과잉투자를 방조한 과다대출, 자산거품으로 인한 금융시스템 붕괴 등)에 의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거시건전성 감독(macro-prudential supervision)이라는 새로운 감독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개념의 착안점은 전체 금융시스템에 대한 총체적 리스크가 개별 금융회사의 집단적 행동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즉 리스크의 내생화).
예컨대, 경기 악화로 중소기업의 매출이 부진한 경우 개별 은행의 입장에서는 가급적 대출을 회수하거나 신규 대출을 억제하는 것이 신용리스크 관리에 유리하다.
그러나 많은 은행이 동시에 이러한 행동을 취할 경우에는 경기 하락폭이 커져 저소득층 가계나 중소기업의 파산이 증가하고 금융시스템은 불안정해진다. 거시건전성 감독에 의하면, 경기 침체(활황)시에는 BIS 자기자본기준을 완화(강화)함으로써 이러한 은행대출의 경기순응성을 줄일 수 있다.
거시건전성 감독은 미시건전성 감독을 보완하는 개념이지만 금융감독의 접근방식, 방법론과 기법 등에 상당한 변화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감독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IMF와 한국의 금융감독당국은 11월 7, 8일 양일간 거시건전성 감독에 대한 국제컨퍼런스를 서울에서 개최한다. 이번 회의에서 거시건전성 감독의 개념과 방법론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져 그 발전의 확실한 토대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