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장기업 부도와 관련해 흔히 제기되는 비판은 감독당국이 부도 직전에 실시된 유상증자를 막지 못해 투자자보호에 허점이 있다는 것이다. 은행은 부도회사의 사정을 파악하고 대출금을 조기에 회수해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점과 비교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금융회사를 매개로 하는 간접금융과 자본시장을 통한 직접금융의 작동원리가 상이함에도 이를 동일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드러나는 것 같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간접금융에서는 예금자가 그 자금을 직접 운용하지 않는다. 대신 은행이 엄격한 여신심사를 통해 '좋은 기업'과 '나쁜 기업'을 구분해 운용한다. 이에 따라 예금자는 원금과 약간의 이자수익을 보장받는다.
반면 자본시장에서는 투자자가 투자에 앞서 직접 대상기업을 판단해야 한다. 그에 따른 투자손익도 전적으로 투자자에게 귀속된다. 투자자는 스스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자본시장의 냉혹한 원칙이다.
만약 감독당국이 투자자를 대신해 기업을 판단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감독당국은 기업이 유가증권을 발행할 때마다 투자위험요소를 확인하기 위해 강도 높은 심사를 수행할 것이다. 이를 위해 많은 심사인력이 필요하게 된다.
기업은 제때에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기업활동에 차질을 받을 수 있다. 자원배분의 왜곡과 시장의 창의성이 약화되는 부작용도 예상할 수 있다. 이렇게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지출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이유로 감독당국이 유가증권의 적격성을 사전에 심사, 그 발행 여부를 결정하는 실질심사주의(Merit Approach)는 과거의 방식이 됐다. 오늘날은 기업으로 하여금 투자판단에 중요한 정보를 완전하게 공시토록 하는 공시주의(Disclosure Approach)가 자본시장의 기본원리와 글로벌스탠다드가 됐다.
공시주의는 투자자가 공시를 분석하고 투자의 위험과 수익을 보다 정확하게 평가해결국 자신의 이익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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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공시주의 아래서 감독기관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는 공시 관련 당사자인 기업과 투자자의 역할까지도 종합적으로 되새겨 보아야 한다.
첫째, 무엇보다 기업이 올바르게 공시를 해야 한다. 일부 기업은 법규에서 정하고 있는 최소한의 공시에 대해서도 불필요한 규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자본시장을 통해 거액의 장기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이 투자자에게 기업정보를 제대로 알리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말로만 주주 중시의 경영이 아니라 그 시작은 올바른 공시를 하는 것이다. 향후 증권집단소송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소송의 단초는 회사가 중요한 정보를 투자자에게 빠짐없이 공시하였는지의 여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증권집단소송 환경하에서는 완전하고 정확한 공시가 기업의 계속성을 보장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둘째,공시의 진실성을 제고하기 위한 감독당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말뿐인 투자자보호로는 시장에서 신뢰를 얻을 수 없다. 감독당국은 시장을 기만하는 어떠한 허위공시도 용납해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 기업에게 투자판단에 중요한 정보를 완전히 공시하도록 요구하는 등 공시서류의 부실기재 방지를 위한 심사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아울러 사후적으로 공시서류의 허위기재 등이 적발될 경우 공시위반에 대한 엄격한 법적책임을 추궁하는 사후 집행기능을 엄정히 수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시의 최종적인 이용자인 투자자도 공시를 보다 현명하게 활용해야 한다. 최소한의 공시내용도 참고하지 않는 '묻지마 투자'는 위험하다. 투자자는 '대한민국 기업정보의 창'인 전자공시시스템(DART, http://dart.fss.or.kr)에서 대상기업의 공시내용을 파악해야 한다.
특히 감독당국의 정정명령에 의한 정정신고서에는 기업의 투자위험요소가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이를 적극 활용하는 등 합리적인 투자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