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투초대석]장동규 한국감정원장, 꾸준한 경영혁신 5년째 흑자
"공기업이 민간업체와 경쟁해 살아남는 길은 혁신밖에 없습니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부문은 무조건 고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합니다."
한국감정원 장동규 원장(59)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감정평가시장이 완전자율 경쟁체제인 만큼 공정한 평가는 기본이고 새로운 서비스로 무장해야 뒤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감정원의 기업혁신 모델은 공기업이 시장경쟁에 적응한 대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1990년대 감정평가 시장이 완전히 개방되면서 심각한 경영 위기를 겪었지만 구조조정 등 조직혁신을 단행해 유일무이한 감정평가 공기업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한때 50%를 넘던 시장 점유율이 20% 밑으로 떨어졌고 설사가상으로 2000년 초 자회사였던 '한국부동산신탁' 부도로 채무보증에 얽혀 자본잠식 상태까지 이르렀지만 감정원은 철저한 경영혁신을 바탕으로 곧바로 중심을 잡았다.
감정원은 2001년 65억원 영업적자에서 2002년 70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후 5년 연속 흑자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공기업으로서 공적업무를 수행하는 동시에 민간업체와 100% 경쟁해야 하는 환경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감정원 장 원장을 만나 회사 경영 목표와 사업 전략 등에 대해 들어봤다.
-감정원이 올해로 창립 38주년을 맞았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취임하셔서 탄탄한 회사로 만들기까지 감회가 새로우실텐데요.
취임전에는 감정원이 다른 공기업처럼 안정된 업무영역이 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와보니 딴 판이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민간평가업체와 똑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면서 공기업이라는 간판 때문에 수익이 없는 사업까지도 떠맡아야 합니다.
일 잘하는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는 커녕 연봉도 2% 이상 올려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회, 건설교통부,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등 기관 감사에다 각종 혁신과제까지 수행해야 합니다. 이처럼 어려운 업무 환경에도 불구하고 매년 놀라운 성장세를 기록할 수 있는 것은 꿋꿋하게 제 역할을 해내는 직원들 덕분입니다.
-감정평가시장에서 감정원이 독점적 지위를 인정받는 것은 이제 옛말이 됐습니다. 공기업으로서 민간평가사들과의 경쟁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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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감정원은 공기업 중 유일하게 시장경쟁에 100% 노출돼 있습니다. 민간 감정평가법인이 26개로 늘었고 개인사무소는 200개를 훌쩍 넘어섰습니다. 환경이 이렇다보니 감정원의 시장 점유율은 20%를 밑돌고 보상평가업무의 경우 전체 물량의 6%를 확보하기도 어렵습니다.
감정평가법인 주민추천제도가 시행되면서 놓친 사업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땅 주인들은 감정원이 보수적으로 평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평가법인 지정 과정에서 감정원을 배제합니다. 주민들의 반대로 보상평가를 포기한 대표 사례가 은평뉴타운입니다. 행정복합도시도 전체 면적의 18분의 1 밖에 사업을 따지 못했습니다.
민간법인에 비해 활동비를 충분히 쓸 수 없어 영업활동이 제한적인 것도 어려운 점입니다. 세법상 감정원의 연간 영업활동비 한도액은 6000만원입니다. 본사 13개실과 37개 지점당 영업비가 월 10만원에 불과한 셈입니다.
-시장 경쟁력을 높이고 수익도 내려면 특별한 전략이 필요할텐데요.
감정원은 공기업으로서 감정평가업계를 선도하는 동시에 정부 정책도 지원해야 합니다. 민간업체처럼 고객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평가하는 것은 일시적인 만족도를 높일 수는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공신력을 무너뜨리는 행위입니다.
조직력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평가하는 것이야 말로 고객의 신뢰를 쌓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객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과대감정예방시스템을 도입했고 실무자가 평가한 것을 여러 명이 다시 검토하는 다단계 심사제도도 시행하고 있습니다.
고객이 이의신청을 하면 재심의를 하고 손해배상충당금을 충분히 쌓아 고객의 손해를 줄이도록 했습니다. 지난해말 현재 충당금이 310억원으로 어떤 사건에 대해서도 금전적으로 책임질 수 있습니다.
-2002년부터 5년 연속 흑자 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매년 영업이익이 확대되고 있는데 실적 개선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노조를 비롯한 직원들의 협조가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노조위원장과 자주 대화를 나누고 노조 워크숍 등에 참석해보면 회사보다 직원들이 먼저 나서서 일감을 찾으려고 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습니다.
회사가 경영 위기를 맞았을 때는 감정평가사들이 대거 퇴직하는 등 조직 체계가 흔들렸지만 뼈를 깎는 노력이 실적 개선이라는 결실을 맺으니 직원들도 신이 나서 일하는 것 같습니다. 일선 지점에서는 매일 업무 성적을 매기고 본사에서는 새로운 일꺼리를 찾기 위해 특수사업 개발로 분주합니다.
-감정원 주수입원인 감정평가 외에 추진하고 있는 업무는 무엇이고 어떤 분야가 주력인가요.
보상수탁, 재건축·재개발 컨설팅, 부동산정보조사, 사업타당성 분석 등이 주요 연관 사업입니다. 보상수탁은 개발사업 주체 대신 보상 업무를 처리해주는 업무입니다. 토공이나 주공처럼 개발사업을 주로 하는 공공기관은 자체 보상전담반이 있지만 1회성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공공기관이나 민간단체의 경우 보상 업무를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한다는 점에 착안해 뛰어들었습니다.
재건축·재개발 컨설팅도 고객만족도가 높은 사업 분야입니다. 전국 30개 단지의 컨설팅 업무를 맡고 있으며 연간 매출액은 100억원에 달합니다.
현재 전체 매출에서 연관사업의 비율은 20% 정도지만 2010년까지는 35%로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선진평가기법을 개발해 영업권, 저작권, 환경피해보상, 첨단기계설비, 기업평가 등 특수하고 전문적인 분야까지 업무 영역을 확대할 방침입니다.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면 택지비 감정가 산정 등 조항에 따라 평가업계가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감정평가의 중요성이 점점 커질텐데 현재의 감정평가제도 아래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감정가가 시가보다 공정하다는 취지에서 이같은 법안이 마련됐지만 어떤 기준을 제시해도 감정가 적정성을 놓고 논란이 일 것입니다. 공정한 기준없이 사업장마다 다른 민간평가법인이 감정할 경우 비슷한 지역이라도 감정가가 크게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업장과 평가법인에 따라 감정가가 다른 고무줄 평가서가 나오면 앞으로 전국의 부동산 가격도 형평성을 잃을 가능성이 큽니다. 중립성을 갖춘 공공평가기관이 평가업무에 참여한다면 어느 정도 중심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원이 매년 전국의 공동·단독주택 가격을 조사하는 만큼 집값에 대한 견해도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향후 부동산 시장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시세가 땅과 건물을 합친 감정가보다 지나치게 비싸다면 일단 거품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강남의 고층 주상복합아파트가 대표적입니다. 50평형 주상복합 시세는 25억원을 호가하지만, 이런 물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분은 5평에 불과합니다. 건축비를 평당 500만원으로 높게 잡아도 건물값은 2억5000만원입니다. 땅값이 22억5000만원이라는 얘기인데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금액입니다.
분양가상한제, 대출규제, 금리인상 등 각종 규제정책이 어우러져 집값이 안정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 떨어질 것입니다. 내집마련 수요자는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조금 더 기다리면 합리적인 가격에 내집을 마련할 날이 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