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위크]은퇴, 그 후의 삶
서울 은평구 주택가에 위치한 조그만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달콤한 쿠키 냄새가 기분 좋게 퍼져 나온다. 오븐과 냉장고, 작업대만으로 이루어진 단촐한 쿠키 공장 한 켠에서 연신 땀을 닦으며 쿠키를 굽고 있던 '슬림쿠키'의 임락재(61) 사장이 반갑게 취재진을 맞았다. 2년 전 59세의 나이에 실버 창업에 뛰어든 그는 "요즘 사업하는 재미에 나이를 잊고 산다"고 첫 말문을 열었다.
◆'남과 다른 상품'으로 승부하라.
밀가루를 반죽하고 재료를 배합하고 오븐에 굽고 쿠키를 만드는 그의 손이 인터뷰 중에도 쉴새 없이 움직인다. 지금은 조그만 쿠키 공장의 사장이 된 임 사장은 젊은 시절 아동 만화의 스토리 작가로 활동했다. 아이들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일이 좋아 만화를 업으로 삼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만화 만으론 먹고 살기는 어려웠다고 털어놓는다.
현실에 밀려 만화에서 손을 뗀 뒤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하며 몇 차례의 실패도 맛봤다. 2000년 54세의 나이에 은퇴를 맞이한 그는 노후자금으로 새로운 사업을 계획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한번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친다. 먼 친척에게 투자한 노후자금이 회수 불능 상태가 된 것이다. 2005년, 그는 빈손으로 '슬림쿠키'의 첫 문을 열었다.

"예전부터 창업에 관심이 많긴 했지만 노후 자금조차 뜻하지 않게 잃었던 터라 새로운 일이 필요한 시기였습니다. 그때 저에게는 창업이 유일한 희망이었던 셈이죠.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절박함이 지금과 같은 성공의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돈도 나이도 창업에 걸림돌이 될 수 없다는 걸 덕분에 깨달을 수 있었으니까요. 단돈 200만원으로 59세의 나이에 처음 시작한 사업이 이만큼 성장했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죠. "
지금은 추억이 됐지만 임 사장은 은퇴 후 3년 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털어놓는다. 노는 것도 힘든 일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고 한다. 그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3년 동안 임 사장이 읽은 책만해도 500여 권.
책마다 촘촘히 적혀있는 깨알 같은 글씨들이 그 시절 그가 했던 치열한 고민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하지만 바로 그 3년 동안 읽었던 수많은 책에서 얻은 아이디어가 임 사장이 실버창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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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 하나를 팔아도 남이 생각 못한 '새로운' 것을 개발해야 창업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 새로움을 찾는데 독서가 많은 도움이 됐죠. 시대의 흐름을 읽고, 창의력을 길러주고 이보다 더 확실한 창업 준비가 어디 있겠습니까. "
'슬림쿠키'를 구상한 것도 이맘때쯤 이었다.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다 보면 오후쯤 출출함을느낄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 쉽게 집어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 출발이었다. 그의 상상 속에 있던 사업 아이템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이 2003년.
그는 쿠키에 남은 인생을 바치기로 결심하자마자 제빵 학원을 찾았다. 꼬박 2년 동안 제빵 학원에서 기술을 배우며 피자부터 쿠키까지 모든 과자 종류는 다 만들어 봤다. 아무리 작은 아이디어라도 떠오르는 즉시 실험에 옮겨가며 제품 개발에 매달린 끝에 2005년 드디어 '슬림 쿠키'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슬림쿠키는 호두, 귀리 등 15가지 식이섬유를 주원료로 만들어진 웰빙 쿠키. 보통 식이섬유는 맛이 없는 물질로 알려진 데 반해 슬림쿠키는 단 맛이 살아있어 건강에도 좋고 맛도 좋아 인기를 얻고 있다. 무엇보다 식이섬유 덕분에 포만감을 느끼기 쉽고 배변 효과에도 좋아 20~30대 젊은 여성들이 특히 많이 찾는다고.
"창업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남과 다른 상품을 개발하는 걸 목표로 뒀는데 그 점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우리 쿠키를 한번 맛본 분들은 전혀 새로운 맛과 기능에 반해 다시 찾게 된다고 말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그 동안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구나 싶어 참 뿌듯하죠."
◆열정은 나이를 뛰어 넘는다.
최근에는 슬림쿠키의 뛰어난 맛과 건강 효능이 알려지면서 입소문을 타고 슬림쿠키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10명 남짓의 소수 회원으로 시작한 슬림쿠키는 2년 새 회원수만 5000여 명을 훌쩍 넘어설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월 매출만 해도 1000~1500만원에 이를 정도로 꽤 안정적인 수입을 올리고 있을 정도. 하지만 이렇듯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는 슬림쿠키도 사업 초기에는 집에서 가정용 오븐으로 쿠키를 만들어 판매할 만큼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최소한의 자본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으니 가정용 오븐이라도 제게는 너무 귀한 사업 자금이나 마찬가지였죠. 지금이야 조그마한 작업장이라도 있지만 그때는 쿠키를 만들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던 때였어요. 따지고 보자면 인터넷으로 판매처를 정한 것도 소자본으로 창업이 가능하다는 이유가 가장 컸죠. 젊은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인터넷 사업에 뛰어든다는 게 두렵기도 했지만 마냥 두려워만 하기에는 쿠키를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다는 제 열정이 더 컸습니다. "
인터넷을 통해 어렵게 '슬림 쿠키'라는 간판을 내걸긴 했지만 이번에는 홍보가 문제였다. 소비자가 직접 주소를 입력해 홈페이지에 찾아 들어와야 하는 인터넷 쇼핑몰의 특성 때문에 '슬림쿠키'라는 상호를 먼저 소비자들에게 알릴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홈페이지에 '공짜로 쿠키를 선물한다'는 광고판을 내걸었다. 그리고는 지인들부터 자신의 쿠키를 선물하기 시작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서서히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슬림쿠키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쿠키를 향한 그의 열정이 이루어 낸 쾌거였다.
"돈도 안 받고 쿠키를 만들어 준다고 하면 남들은 대단하다고 하지만 저한테는 그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제가 개발한 쿠키로 성공하고 싶다는 열정이 있으니까 편하게 노는 시간에 쉬엄쉬엄 쿠키를 만들어 선물이라도 하는 것이 저에게는 오히려 덜 힘든 일이었던 거죠. 덕분에 제 쿠키도 많이 알려지고 사업도 잘 돼서 요즘은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쿠키에 대한 그의 열정을 드러내 주는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올해 여름에는 그가 직접 설계한 새로운 반죽 기계도 들여놨다. 직접 기존의 기계를 연구한 끝에 단점을 보완한 기계를 개발하고 발품을 팔아가며 좋은 기술자에게 부탁해 완성한 기계였다.
인터넷으로도 주문 가능한 재료를 굳이 발품을 팔아가며 직접 장을 보는 것도 쿠키를 향한 그의 열정을 드러내준다. 더 좋은 재료를 구해야 더 맛있는 쿠키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게다가 새로운 트렌드를 읽는 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계속 발품을 팔아가며 장을 볼 계획이라고 한다.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주변에 조언해 줄 만한 사람이 없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저 혼자 고민하고 해결해야 했으니까요. 쿠키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그 때마다 포기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확실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하루하루 발전하는 게 힘들다기 보다는 오히려 재미있었습니다."
나이를 잊은 열정을 간직한 그에게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데 나이는 전혀 의미가 없다"고 힘주어 답한다.

◆ "나이는 도전의 걸림돌이 아니다"
"육체적인 나이보다 얼마나 젊은 의식을 갖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거겠죠. 나이를 먹으면 나이 먹는 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나이'를 핑계로 포기하기엔 아까운 일들이죠. 굳이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마음만 젊게 가진다면 모두 도전할 수 있는 일들이에요. 오히려 자식이나 가정에 매여 있던 젊은 시절에 비해 은퇴 후야말로 자식들도 다 크고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더 없이 좋은 때라고 생각합니다. "
노후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사뭇 진지해진 그가 말을 이어간다. "60세쯤 은퇴를 맞이한 사람들 대부분이 은퇴자금을 사업 밑천으로 사용한다는 걸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위해서는 섣불리 투자했다 창업이 실패했을 경우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거죠.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마음을 조금만 달리 먹으면 노후 생활이 180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평균 수명이 연장되고 있는 요즘 시대에 60세에 은퇴를 한다고 해도 남은 인생은 평균 10~20년 남짓. '얼마 남지 않은 인생'으로 치부하기엔 10년이 넘는 은퇴 후의 인생은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이루어내고도 남을 만큼 긴 시간'이라는 것이 임 사장의 설명이다.
"은퇴 후 여행이나 취미 생활로 여생을 보내겠다는 희망은 이미 옛날 얘기죠. 노후가 길어지고 있는데 10년이 넘는 세월을 여가 생활로 보내는 건 아마 당사자에게도 괴로운 일일 겁니다. "
그런 그가 꼽은 최고의 재테크 방법 또한 '자신의 직업에 충실한 것'. 임 사장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열정만 있으면 언제까지라도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는데 이보다 더 확실한 재테크 방법은 없다고 다시 한번 강조한다.
59세 늦깎이 나이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그 도전에 열정을 다하는 임락재 씨. 올해 61세가 된 그는 바로 지금 '열정을 다해 꿈을 좇아가는' 인생의 절정기를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