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조사가 진행중이므로 이 사안에 대해 더 자세히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희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HP는 최고의 윤리기준을 준수하는 회사이며 저희 직원들과 협력업체들도 같은 기준을 가지고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내사기간까지 합쳐 1년여 동안 진행한 수사에서 한국HP의 전현직 임직원 10여명이 연루된 IT장비 납품비리 사건의 전모를 발표하던 지난달 31일 한국HP가 기자들에게 보낸 짤막한 공식 메시지다.
경찰이 공식적으로 수사결과를 발표했는데 "조사가 진행중"이라는 말은 무엇이며, 이미 전현직 간부의 연루 혐의가 드러났는데 "최고의 윤리기준"을 운운하는 것은 또 무슨 뜻인지 의아했다. 게다가 걷치레로라도 미안하다는 말은 절대 할 수 없다는 듯한 자세다.
그러나 이번 일은 HP가 한국 국민들과 IT업계 종사들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다짐해야 하는 사건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IT장비 유통업체가 장비를 싸게 사기 위해 한국HP 임원에게 뇌물과 향응을 제공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국내 시장을 독식하고 있는 다국적 IT장비업체들은 통상 100여개의 유통업체들을 상대로 '할인율'이라는 칼을 휘둘러 장비 유통시장을 장악한다.
장비의 원가가 얼마인지, 100대를 유통할 때와 1000대를 유통할 때 할인율 차이가 얼마인지는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다. 유통업체의 성격과 사업의 특성에 따라 할인율이 98%에 달하는 경우부터 0%까지 다양한 계약들이 존재한다.
이런 다국적 IT기업의 불투명한 장비가격 운용이 한국 IT산업에서 발생하는 '비리사슬'의 시작점이 되는 것이다.
4년여 전 한국IBM이 비슷한 일을 저질렀을 때에도 합당한 사과는 없었다. 그러니 재발방지 대책은 기대조차 못할 일이었다. 그 결과가 이번에 나타난 한국HP사건은 아닐까.
한국HP는 여기서 한 술 더 떠 기자들에게 보도자료 전달이라는 심부름까지 떠넘겼다.
"저희가 사회부(경찰청) 담당 기자분들 이메일 주소를 몰라서 그러니 사회부(경찰청)기자분들께도 메시지 전달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