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다국적 IT업체? 전방위 '비리사슬'

투명한 다국적 IT업체? 전방위 '비리사슬'

이구순 기자
2008.01.31 16:34

경찰청, 장비업체-총판-시스템 발주자 연결된 납품비리 적발

투명경영을 강조해온 다국적 IT기업의 전방위 비리사슬이 경찰에 의해 적발됐다.

세계적 IT장비업체가 한국에서 영업을 하면서 제품을 유통하는 업체에게 제품을 규정보다 더 싼값에 할인해 팔고 이에 상응하는 금액의 향응과 금품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뿐 아니다. 싼 값에 제품을 사들인 유통업체는 제품 공급권한을 유지하기 위해 시스템통합(SI)업체 담당자와 사업을 발주하는 공무원, 기업 담당자등 전방위적인 비리사슬을 형성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31일 수사발표를 통해 지난 2003년부터 2007년 6월경까지 산하 총판으로부터 "높은 할인율로 납품받을 수 있게 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12억5700여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한국HP의 부사장 및 본부장 등 임직원 10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또 이들 총판으로부터 서버장비 등의 납품대가로 10억7000여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정보통신업체 대표이사 및 공무원 등 17명을 업무상배임, 배임수재 및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검거하는 한편, 이들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회사자금 10억5900여만원을 영업활동비 명목으로 수령해 사적으로 유용한 총판 임직원 11명 등 총 38명을 검거했다.

경찰에 따르면 '비리사슬'은 우선 한국HP에서 서버 같은 물건값을 깎는데서 부터 시작됐다.

한국HP 부사장 H씨 등 3명은 10억원 상당의 시스템을 팔면서 총판인 정원엔시스템에게 5700여만원을 추가로 할인해주고 이에 상당하는 해외 골프여행 등 개인 여행경비를 여행사에 대납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또 한국HP의 전 공공사업본부장 S씨등 7명은 532억원 규모의 전산장비를 정원엔시스템이 높은 할인율로 살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명절인사비, 카드비용대납, 전세자금, 여행경비, 영업지원비 명목으로 12억여원을 교부받았다는 혐의다.

싼 값에 장비를 공급받은 정원엔시스템은 발주업체인 메리츠증권에 지속적으로 제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청탁을 넣고 이 회사 이사 J씨 등 전산시스템 발주업체 임직원 13명에게 8억7000여만원을 상납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항공안전본부 공무원등 6명도 총판으로부터 2억400여만원의 뇌물을 수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다국적 IT기업의 장비유통업체는 제품을 싼 값에 받아 시스템 발주처와 SI업체들 안정적인 납품처를 유지하는데까지 전방위적으로 비리사슬을 형성한 것이다.

특히 이런 검은돈을 전달하는데는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작전이 쓰였다. 이를테면 L정보통신 대표이사 K씨는 자신의 아파트 내 공원에서 박스에 담겨진 현금을 받았고 M증권 이사와 알선자는 커피숍, 주차장, 도로 상에서 만나 차 트렁크나 뒷좌석에 넣어주는 쇼핑백으로 현금을 받았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항공안전본부 공무원은 자신이 사용한 카드전표를 건네주고 대금을 처조카 명의의 통장으로 돌려받았으며 심지어 강변북로 갓길에 차를 나란히 세우고 현금이 든 쇼핑백을 주고받기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사건에 대해 수사를 벌인 경찰청은 "소수의 외국계 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국내 전산장비 시장에서 다국적기업들이 다수의 총판업체를 거느리며 '할인율'을 통해 가격결정권을 행사하는 다국적 기업의 선택에 의해 총판업체의 납품여부 및 마진이 결정되는 역학관계가 있고 이로 인해 다국적 기업 임직원에 대한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금품로비 행태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묵인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또 "영업비, 명절인사비 등의 명목으로 총판의 대표이사 사무실이나 승용차 안에서 은밀하게 전달받은 현금 또는 상품권을 골프여행, 낚시 경비, 전세자금 등 개인비용으로 사용하는 행태까지 보이고 있다"면서 "발주기관의 선택으로 한번 납품될 경우 업그레이드, 유지보수 등 지속적인 수입이 보장됨에 따라 IT 업계 전반에 걸쳐 현금은 물론 세미나 명목의 해외여행, 카드 대납 등 다양한 형태의 금품수수 관행이 만연돼 있음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이번 사건은 투명성이나 윤리 면에서 높은 수준으로 여겨졌던 다국적 IT기업, 대기업을 비롯한 IT업계 전반에 걸친 금품로비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향후에도 IT업계의 시스템 납품 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수사를 적극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가 지난해 6월 다국적 IT장비 업체의 총판인 코스닥 등록업체정원엔시스템(1,193원 ▼55 -4.41%)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하면서 IT업계의 납품비리에 수사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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